런던의 타이포그래피 도서관, 제본소, 레터프레스 공방
새로운 지역에 방문할 때마다 그 지역의 타이포그래피 관련 도서관, 아카이브에 꼭 들르는 편이다. 그 나라의 역사가 담긴 민족성 및 여러 특성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오랜 전통을 보존해 오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 런던
런던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며 타이포그래피 도서관, 전통 제본소, 레터프레스 공방 등에 방문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1. 세인트 브라이드 도서관 (St. Bride Library)
도서관은 한 달에 두 번씩 대중에게 오픈하는데 영국 출판계의 역사를 담은 책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오픈 일에 맞춰 미리 예약을 하고 방문을 해야 한다. 타입, 북 디자인부터 제본, 배포까지 섹션이 나누어져 있어 섹션별로 그들의 오랜 세월이 지난 책부터 현재의 책까지 직접 볼 수 있다. 그리고 도서관은 자원봉사로 운영이 되는 듯하는데 그래서인지 요청하면 책을 추천해주시기도 하고… 친절을 느낄 수 있다. 이 곳에 방문했을 때 우연히 발견한 책은 런던에서 책을 만들었던 사람들에 대한 연도별로 기록이 되어 있는 50년은 더 지난 책이었다. 1980년…1920년대에 누가 어디에서 서점을 운영했었는지, 어려움은 무엇이 있었는지, 그리고 퍼블리셔들의 책을 만드는 과정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두 달에 한 번 씩, 화요일에 아이 매거진(Eye Magazine)에서 주최하는 타이포그래피 관련 토크가 열린다. 주로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강연을 하고 전문적으로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2. 위번 바인더리 (Wyvern Bindery)
런던에는 직접 장인이 수작업으로 북 바인딩을 해주는 제본소가 있다. 북 아트를 하는 곳이라 오해할 수도 있는데 기존의 형태의 책을 원하는 요청대로 정말 정교하게 만들어준다. 바인더리에는 가죽, 스웨이드, 천 등의 표지를 만드는 재료 샘플도 있고 소량 또는 대량으로 박을 하거나 레터프레스 표지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바인더리 직원들이 에티오피아의 도서관에 방문하여 책 만드는 워크숍을 열었다.
여담으로 영국은 제본도 하나의 책을 만드는 과정으로 중시해서 학생들이 과제를 직접 제본해 오기도 한다. 제본 방식에 관심이 많다 보니 영국의 일반 예술대학교에서는 제본사가 북바인딩을 가르쳐주는 워크숍이 개설되기도 하고 캠버웰 예술대학교에는 책 제본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과정이 있다고 한다. 오랜 전통을 지닌 런던에서 디자인하고 생활하다 보면 내가 그 역사 속에 한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3. 레터프레스 공방
런던의 디자인 학교에는 대부분 레터프레스 시설이 존재하는데 내가 다녔던 학교 (Royal College of Art)에도 저명한 레터프레스 테크니션(Ian Gabb)이 학생들의 작업을 도와주는 워크숍이 있었다. 타입을 직접 만져보고 세밀하게 타입 세팅을 할 때면 목이 정말 아프지만... 하나하나 자간과 행간을 조여 가는 재미와 원하는 잉크를 고르는 재미 또한 있다. 그리고 학교 밖 레터프레스 공방으로는 Harrington & Squires라는 곳이 있는데 주인인 Chrissie는 런던의 레터프레스를 잇고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별세하여 몇 분 안 계시다고 말씀하시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