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기를 가족으로 들이기 전, 나는 자기 전까지 범죄 분석 유튜브를 라디오처럼 들으며 잠들곤 했다.
기본적인 우울감이 있다보니 감정을 따라가야 하고 호흡이 긴 드라마나 영화는 부담스러웠다.
범죄물이 자극도가 높아 낮은 집중력을 쥐어짜서라도 들을 수 있었다.
빵기와 함께 살고 난 이후, 그 무시무시한 영상들은 고양이 정보 컨텐츠, 고양이가 좋아하는 음악과 영상 컨텐츠로 바뀌고 있다. 내가 각 잡고 '이제 고양이를 키우게 됐으니 좋은 집사가 돼야지, 난 훌륭한 가족이 될거야. 동물을 아끼고 사랑할거야.' 이런 자세를 가져서가 아니다.
스스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때도 많은 나지만 빵기에게 만큼은 가능한 더 많은 배려를 하고 싶다.
나는 빵기에게 기대하는 게 없다. 빵기가 내 말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빵기가 지인들과 있을 때 나만 졸졸 따라다니기를 원하지도 않는다.(유튜브를 보니 고양이와 대화를 많이 하면 고양이도 어느 정도 느낌은 알아챈다고 한다.)
빵기에게 받고 싶은 게 없지만 빵기를 으스러지게 더 사랑하고 예뻐하고 챙기고 싶다. 고작 3개월이 조금 지난 어린 빵기를 보며 이 아이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부터 하는 나는.
나는 빵기를 신뢰한다. 빵기에게 주기만 해도 아깝지 않다. 빵기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물질적인 것을 사주면, 왜 더 많은 걸 주지 않냐고 불평하지 않을 것을 안다. 내가 없을 때는 내가 오기를 기다릴 것을 안다. 내가 있다는 존재만으로 빵기는 외롭지 않고, 나 역시 빵기가 있어서 외롭지 않다. 빵기가 참 고맙다.
무기력한 주인이라서 빵기와 많이 놀아주지 못하지만 돈을 열심히 벌어서 장난감도 많이 사줄거다. 빵기와 함께 자는 날에는 중간에 서너번은 깨지만, 가끔 동침을 하며 빵기와 몸을 부비고 꼬물거리는 행복을 누릴거다.
휴일에는 오후에 일어나던 내가 아침 7~8시에 잠이 깬다. '귀찮다, 귀찮지 않다'라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는다. 그냥 빵기를 당연히 챙겨줘야 하니까 몸이 움직인다. 심지어 기분이 상쾌하고 살짝 즐겁다.
작은 몸집 때문에 먹다가 목이 아프진 않을까 싶은, 빵기에게 높을 수도 있는 용기에 깨끗한 정수를 갈아주고 사료도 가득 채워준다. 빵기의 화장실을 치우다보면 빵기가 싸놓은 응가(맛동산)와 쉬야(감자)가 참 신기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모래로 잘 덮어 놓은 걸 보니 우리 빵기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구나, 안도한다. 화장실 앞에 튀어 있는 모래를 치우면서도 기분이 은은하게 좋다. 아기인데도 할 건 다하는 우리 빵기. 끙아를 모래로 참 야무지게도 요리조리 덮어놨구나.
빵기를 통해 사랑을 배워간다. 나는 그동안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었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우리 가족의 헌신적인 사랑을 느낄 때 속으로 '귀찮지 않을까?' 얼마 전까지도 이렇게 생각했던 나다. 내가 비뚤어진 가족 구성원은 아니지만 가족들이 나에게 잘해주고 사랑해주니까 감사해서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치만 빵기와 함께 살면서 부모님이 나에게 느끼는, 자식의 존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마음,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벅차게 행복하셨을 마음의 1%라도 공감하게 됐다.
사랑이란 건, 상대가 진심이 아닐까봐 혹은 상대가 나보다 덜 사랑할까봐, 상대가 언젠가 떠날까봐 마음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반드시 떠날 것임을 알고도 상대방을 신뢰하기에 아니, 내 사랑을 믿기에, 생각을 하기 전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구나. 그 상대를 위한 행동으로 내가 행복해지기 때문에 하는 것이구나.
고양이 정보를 다루는 유튜브에서 노령묘가 죽기 전에 보이는 증상에 대한 영상을 봤다. 거동이 불편해지고 호흡이 가빠지고 자세를 바꾸는 것조차 힘들어 욕창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 빵기가 나와 평생 같이 살 거니까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면 난 그 모습의 빵기와도 함께 하겠지. 난 그런 빵기 곁에서 사랑한다고 말하며 지금처럼 수십 개의 애칭으로 빵기를 부를거다. 살아있는 생명으로 참 예쁘게 와줘서 고마워.
부모님도, 내가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도 언젠가 내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무기력하고 귀차니즘 심한 나지만, 이별조차 아름답게 빛나도록 사랑해야지. 사랑한 기간은 아주 길고 이별의 순간은 멀리 있는 별처럼 아주 짧고 작게 빛나고 말도록 마구마구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