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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Sep 21. 2023

내 첫사랑 빵기

바라만 보아도 좋아요. 곁에만 있어도 행복해요.

빵기와 함께 지내는 것이랑 연애를 비교할 수 없지만 자꾸 비교가 된다.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사랑한 적이 있던가. 이런 마음으로 연애를 할 때 누군가를 사랑했다면 그걸 '남녀간의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내 사랑이 너무 과해서 '존재에 대한 사랑' 급이라 빵기에 대한 사랑은 어쩌면 '자식에 대한 사랑', '어린 것에 대한 사랑' 근처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침을 먹지 않는다. 점심도 붐비는 시간에 이동하고 먹는 것이 번잡스러워 거른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빵, 우유로 허겁지겁 10분 정도 시간을 할애해 때우는 식이다. 밥을 대충 때우는 이유는 귀찮고 돈이 아까워서다. 그렇지만 빵기에게는 비싸고 좋은 사료를 준다. 아주 오랫동안 안쓰고 버티던 정수기를 들여 깨끗한 물을 준다.


머리가 단발을 넘어서면서 머리끈이 필요할 때가 있다. 쿠팡에서 3원 남짓하는 고무줄 머리끈 주문하기가 아깝다. 빵기를 위한 캣타워, 온갖 장난감, 손톱깎이, 간식 등은 잘도 주문한다.


하지 말았으면 하는 행동을 빵기는 자주 한다. 세탁실에 따라들어와 먼지 가득한 세탁기 뒤로 쏙 숨었다 나오기, 중문 너머 더러운 신발들이 있는 현관 나오기, 주방 수납장을 열면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기, 테이블 위에 놓은 펜을 가지고 놀다가 소파나 책장 밑에 넣어 놓기 등. 그래도 빵기에게 화가 나지 않는다. 빵기니까. 빵기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빵기다운 행동이라 생각한다.


빵기에게 바라는 것은 이름처럼 잘 먹고 응가도 잘 하고 빵기도 시원하게 뀌고 하루하루 건강하게 편안하게 내 곁에 있기만을 바란다.


안다. 빵기가 언젠가 내 곁을 떠날 것이란 것을. 영원한 만남, 영원한 인연은 없다는 것을. 그래도 빵기에게 그 뒤에 외롭고 슬플 나의 감정을 책임져 달라고 할 생각은 당연히 없다. 또, 빵기가 떠나면 아주 슬플테니 바로 다른 고양이를 들여야지, 혹은 다른 고양이도 함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지는 않는다. 지금은 빵기 뿐이다. 빵기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할 뿐이다. 반려동물과 같이 산다는 것이, 고양이와 산다는 것 완벽 기준이 무엇이겠냐마는 나는 빵기에게 한없이 부족하고, 미안한 가족이다.


연애를 할 때, 첫연애조차 내가 이런 마음으로 한 적이 있었던가. 연애 상대와 고양이는 분명 다르지만 언젠가 헤어질 것을 알고도, 심지어는 헤어지지 않고 결혼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도 이렇게 최선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하고 헌신적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런 사랑을 받았던 적은 있는 것 같다.


상대와 함께 있든, 아니든 돈도 시간도 마음도 전혀 아깝지 않고 상대방을 완전히 신뢰하며, 상대방 외에는 이 세상에 다른 이성이 의미 없는 세상. 상대방이 바쁘거나 아플 때, 그의 상황이 진심으로 너무나 안타까워 잠을 못잘 정도로 걱정이 되고, 인터넷을 싹 뒤져 해결방법을 찾아보곤 그에게 별 말 하지 않고 조용히 작게라도 도움이 될만한 행동 하는 것.


내가 잠에서 깨거나, 자리를 비웠다 돌아와 그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 알려주지 않았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시 돌아온 순간 어디 갔었냐고 묻지도 않고 마주한 순간너무 반워 행복한 감정만 남는 그런 사랑.


얼마간 만나다 내가 결혼 적령기가 되어 갑자기 헤어지더라도 혹은 그 시기를 한참 넘겨 갑자기 나를 떠나더라도, 남들은 연인에게 보통 해주는 것을 나한테 해주지 않아도 탓하지 않을 사람. 그냥 얼마의 기간만이라도 내 곁에 머물러 주어 고마울 사람.


사람에게는 왜 이렇게 기대하는 게 많을까? 사람을 완전히 신뢰하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매일 날 기다리고 있는 빵기를 보며 짠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래서 널 챙겨줄 사람이 나밖에 없고, 그래서 널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하고 느낀다.


빵기야, 너를 만나고 너와 함께 지내면서 끝을 알고 있어도 언니는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해. 이제 사람을 만날 때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무조건 퍼주는 사랑 말고, 깍쟁이 같은 사랑 말고,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하는 거. 빵기야, 널 만나고 나서 언니 스스로 만든 가슴 속 벽들이 많이 허물어져 간다. 이제 햇살이 들테니 푸른 잔디도 나고 예쁜 꽃들도 피겠지? 그럼 우리 빵기랑 놀아줄 나비도 날아다니겠다.


빵기를 더 다정한 품으로 안아줄게.

사랑해. 빵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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