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만성적인 무기력증 환자다. 외로움과 심심함, 허전함도 느끼지만 늘 피곤하고 졸리고 귀찮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것, 그리고 나가기 위해 꾸미고 약속을 잡고 연락을 하는 것이 어렵다.
예전에는 혼자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씻고 카페에까지 굳이 나가서 키보드를 타닥거리며 글을 쓰기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잘 먹으러 다녔다.
그런데 그 모든 단계를 넘어서고 나니 만사가 무의미해지고 귀찮아졌다. 아주아주 오래 혼자 살고 보니 그런 일들도 2~3년 해야 재밌지, 연속해서 오랜시간 하자니 재미가 없더라. 자유란 자고로 속박 후에 주어져야 활공하며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 애초에 묶이지 않는 사람인 나는 '자유가 주어진다'는 개념조차 무의미했다. 자유를 뺏긴 적이 없으므로. 언제나 자유로웠으니까.
그래서 외로움과 허전함의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를 옭아매는 치명적인 이성과의 사랑에 빠지는 것도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한 법. 과연 사는 것의 재미는 무엇일까? 살면서 해야하는 건 너무 많고, 살아서 느끼는 즐거움은 왜 짧을까? 평균적으로 따져본다면 난 요즘 제일 즐거운 시간이 왜 누워있거나 잠자는 시간일까? 그렇다고 지금 사는 생활환경이 불편하거나 힘든 것은 아닌데. 가족과 사는 것도 어차피 익숙해 지는 것이니까.
그러다 빵기를 만났다.
낯을 가리는 성격인 나는 빵기에게도 낯을 가렸고 지금도 여전히 빵기의 몸을 잡고 놔주지 않는다거나 마구 만지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빵기의 존재 자체로 신기할 정도로 외롭지가 않다. 그 작은 몸집에서 뿜어나오는 파워가 이 정도로 대단하단 말인가...
그런데 우리 작은 빵기는 아닌가 보다. 출근하면 늘 혼자인 빵기가 안쓰럽다. 내가 집에 돌아오면 졸졸졸 문 앞으로 다가와선 반겨주고 화장실 앞에 앉아 씻는 내내 안쓰럽게 기다린다. 퇴근 후에 피곤해서 밥 챙겨주고 화장실만 겨우 청소해주고 고양이 자동 장난감을 켜주면 가지고 놀다가 뽀르르 나를 향해 달려온다.
녀석이 잠이라도 좀 곱게 자면 가르랑 가르랑 둘이 온기를 나누며 서로의 정을 느낄텐데 고양이가 야행성인지라 잠이 들라치면 빵기는 내 코나 손발을 살짝씩 깨물기도 한다. 오늘 새벽 4시였다. 빵기가 냐옹~냐옹~ 서럽게 울더라. 나를 깨물며 깨울까봐 다른 방에서 자고 있다가 뭐에 홀린 듯이 빵기를 보러 나갔다. 녀석은 애기처럼 눈을 코~ 감고 또 내 귓볼에 쭙쭙이를 실컷 하였다. 이러다 또 아침에 늦잠을 잘까봐 빵기를 진정시키고 난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잤다. 못말리는 아기고양이 녀석 빵기.
매일 아침 하루종일 고양이티비를 틀어주고 출근하고, 나름 환경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려고 캣타워도 설치하고 먹이퍼즐도 들이고, 함께 있는 동안은 수다쟁이처럼 말도 걸어주지만 4개월 갓 넘은 아기고양이에게 혼자 보내는 하루는 너무 긴가 보다. 나는 빵기 덕분에 외롭지 않은데 빵기는 날 만나면서 외로운 집으로 오게 된 것은 아닌지 마음이 짠하다. 나는 빵기를 만나며 심리적으로 풍족해 졌지만 빵기는 나를 만나서 외로워진 건 아닌지 마음이 쓰인다.
관심과 사랑을 싫어하는 동물은 없을 것이다. 낯도 안가리고 예쁨받을 만큼 충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 빵기는 더더욱. 지난 주에 평일에 3일을 쉬어서 주말 포함 5일 연속 빵기랑 하루종일 같이 있었더니 빵기가 편안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만 지나고 나면 또 연휴니까 나흘은 빵기와 계속 붙어서 지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떤 동물 유튜브를 보니까 '주인과 분리돼 있지 않아서 분리불안이 없는 강아지'라는 제목의 영상이 있던데 속으로 참 부러웠다. 우리 빵기도 그럼 좋을텐데 말이지. 우리 빵기야 얼른 자라서 조금은 더 씩씩한 어른 고양이가 되자~ 그래도 언니가 애기처럼 예뻐해줄게. 그래도 언니가 관심을 많이 주려고 노력하고 우리 빵기 사랑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