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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Oct 06. 2023

빵기 춘기

우리 빵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다

우리 빵기는 참 모든 블로그, 유튜브에 나오는 문제 행동은 다 하려나 보다.


물론 그 이유는 어설프게 빵기를 대하는 나 때문인 듯 하다. 빵기를 불편하게 하다 보니 쌓인 스트레스를 못참고 돌발행동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안쓰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빵기가 힘들지 않도록 더 빵기가 행복하도록 배려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이제 빵기는 5개월령을 넘어섰으니 제법 자라서 주방 씽크대에도 잘 올라간다. 아직 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빵기가 칠 사고가 무엇인지, 빵기에게 위험할 물건은 무엇인지 파악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빵기를 방에 가둬놓고(사실 그대로 표현하고자 한다.) 출근을 했다.


퇴근하고 답답했을 빵기를 생각하며 부랴부랴 문을 열었더니, 역시나 호락호락한 빵기가 아니었다. 온 방에 똥칠을 해놓고 엉덩이 털에도 똥칠을 한 채로 불만가득한 얼굴을 한 빵기의 모습이 날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뒤늦게 구석에서 발견한 소변도 충격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 어쩌겠는가. 빵기에게 화를 낼 수도, 그렇다고 고 조그만 아이에게 손을 댈 곳도 없는데 얼른 치우고 빵기를 위로해 주는 수밖에...


그리고 어제, 빵기를 평소처럼 거실이고 다른 방이고 활짝 열어 자유롭게 풀어놓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돌아왔는데 이럴수가, 이럴수가!!!!! 빵기 너 이럴 수 있는거니... 빵기가 더 심한 사고를 쳤다. 어제는 패브릭(이불, 소파)에까지 똥칠을 으깨놓고 벽지에도 똥칠을 해놨다. 당연히 오줌도 갈겨놨다. 똥오줌을 갈긴 범위가 더 방대했다. 우리 빵기는 배변실수 한 번 하지 않고 아플 때 토도 맨 바닥에만 하던 효녀인데... 어찌 이렇게 된거니... 현타가 몰려왔다. 게다가 엉덩이에 똥이 얼마나 단단히 굳어서 묻어있는지 물티슈로 닦을 수가 없었다.


집을 어느 정도 수습하고 빵기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지난 번 목욕 때는 빵기가 미끄럽지 않도록 수건을 깔고 조심조심 아주 세월아 네월아 목욕을 시켰지만 너무 피곤하고 지쳐버린 나는 오로지 똥을 떼야한다는 일념 하에 빵기에게 샤워기를 갖다 대고 폭풍 세정을 시켰다. 빵기녀석이 버둥거리고 도망가려 하는 것도 통하지 않았다. 씻고 나와서 털을 말려주려는데 드라이어 바람을 지난번과는 다르게 피하길래 물만 잘 닦아주고 더이상 강요하지 않고 보일러를 켰다.


진이 빠졌다.


가둬놨던 하루의 충격이 너무 컸던 건지, 하루종일 외로워서 그런건지, 연휴 내내 붙어있다가 출근을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 모든 것 때문인지 빵기가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건 분명한 것 같다.

내 외로움을 빵기에게 그대로 전이시키고 나만 빵기 덕에 행복해진 게 가슴이 아파 빵기의 동생을 데려왔다. 당장 합사는 어렵고 15일 정도 동생이 안정을 취한 후에 함께 지낼 수 있다고 하니 그때까지 빵기가 잘 참아주길 바란다.


사랑하는 빵기야. 오늘도 네가 똥칠을 해놓는다면... 난 오늘도 군말 없이 치워야겠지만 제발 부탁이야. 언니 좀 봐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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