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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toyourverse Mar 27. 2019

<우상>인가 허상인가

[리뷰] 이수진 감독,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 출연

이수진 감독은 영화 내내 겉으로 보이는 것과 진실(타인에게 전달되지 않은 말이나 본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 같다. 감독은 전작 <한공주>에서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심각한 사회문제를 다뤘다. 가해자와 방관자에 의해 어떻게 진실이 은폐되는지, 피해자가 얼마나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지를 보았다. <한공주>에서는 학교 수업 장면을 통해 진실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교탁 앞에 선 선생님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그리고 관객)에게 중학교 때 배운 것을 모른다고 한탄한다. '사실'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고, '진실'은 본질이다. 진실에는 사실이 포함되지만, 사실이 반드시 진실을 직시하지는 않는다.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해석하는 주체에 따라 사실은 손쉽게 왜곡된다.


<우상>은 왜곡된 우상, 허상을 그리고 있다. 우상은 우리가 가진 오류, 편견, 선입견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 현상을 보고 우상으로 추대하지만, 그 본질은 허상이고 거짓일 수 있다. 구명회(한석규)와 수행원, 동료 정치인이 공항에서 만나는 장면, 유중식과 명회의 아들이 구치소에서 대면하는 장면, 련화(천우희)와 중식(설경구)이 불법체류자 보호센터에서 대화하는 장면 등. 많은 장면에서 인물 사이에 유리벽이 놓여있다. 때로는 서로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을 직접적으로 대사로 언급한다. 사람들은 구명회의 추악한 모습을 알지 못하고 그를 우상으로 추대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구명회가 마치 히틀러처럼 연설을 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가 아닌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보낸다. 우리는 사회적 욕망에 의해 허상을 우상으로 만들었다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이수진 감독은 영화 내에 대사 전달력을 지적받긴 했으나 결국 문제 없다고 판단했다. 내가 극장에서 관람하면서 느끼기로는 연변 사투리의 낯설음보다도 나머지 인물의 대사마저 가끔씩 잘 들리지 않는 게 문제였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지만, 일부 조연 배우의 연기는 어색하거나 과장되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논다. 그런 연기도 감독의 의도가 담긴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낯선 지체 장애인 성적 욕구를 시나리오에 담은 의도는 알겠다. 하지만 부남은 중식과 련화 사이에서 기능적인 역할에 머문다. 영화 전반이 다루고 있는 테마와 지체 장애인의 성적 욕구는 너무 거리가 먼 것 같다.


이수진 감독의 인장 중에 하나는 내레이션과 과장된 음악인 것 같다. <한공주>와 <우상>의 도입부에는 내레이션이 있다. 화면과 별개로 인물의 대사만 플래시포워드처럼 나온다. 미래에 나오는 장면의 대사라서 바로 이해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알게 되는 식이다. <한공주>와 <우상>에서 음악을 활용하는 방법이 유사하다. 특정 장면에서 삽입곡을 강조한다거나 반복해서 나오는 것이 닮았다. 둘 다 김태성 음악 감독이 참여했다. <우상>에서는 'Agnus Dei'(라틴어로 하느님의 어린 양)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 음악과 최 의원(김명곤)의 대사로 기독교적인 은유를 던진다. 구명회는 사실상 메시아가 아니라 허상이므로, (음악은 사뭇 웅장하지만) 조롱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데 영화 분위기는 한없이 진지해서 관객은 헤깔린다. 혹은 관객에게 구명회가 우상처럼 보이는지 질문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우상>이 쉬운 영화임을 밝히고 있다. 분명 해석이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관객과 감독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유리 벽이 있는 것 같다. 영화 <우상>을 본 것이 아니라 허상을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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