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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intta Jan 27. 2019

H-ZeroWorld #M-08

H - hunamism or hope,  ZeroWorld - 부재 상태

[ 세손가락단의 야영지 ]

차량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야영지를 둘러싸며 차벽을 만들었다. 차량 지붕에는 접이식 울타리를 세워 벽을 높이고, 무기도 설치했다.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와 아이들도 각자의 역할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차벽을 세우고, 막사를 짓고, 물건들을 옮겼다. 

마크는 일사불란한 그들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에이든 - 가족 모두가 함께 사냥터를 옮겨 다니는 것은 세손가락단만의 삶의 방식입니다.
에이든 - 온갖 침입과 공격을 견디며, 우리가 깨달은 것은 길 위가 가장 안전하다는 것이죠. 

루터 - 나는 센터 밖의 요새들이 약탈당하는 것을 여러 번 봐왔어. 
루터 - 생사를 함께 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지.
루터 - 한눈팔기는 좀 어렵겠지만.....
마크와 에이든  - ???

칸트는 앨리스를 이끌고 조용히 일행의 뒤를 따랐다.


에이든은 일행을 철창이 있는 차량 앞으로 안내했다.
철창 안에는 좀비 셋이 결박당한 채 갇혀 있었다.
마크는 호기심에 이끌려 철창 가까이 다가갔다.

한 좀비의 볼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크 - 저 좀비가 울고 있어요.....
에이든 - 오늘 사냥 중에 감염된 이들입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래요.
루터 - 각인 반응이야. 아직 인간일 때의 반응이 남아 있는 거지. 
루터 - 감염 직후에 주로 나타나는데 인간일 때의 습관이나 강렬했던 체험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만 남아 있는 거야. 
마크 - 그럼.... 이 좀비는 인간이었을 때 슬픈 일을 겪은 건가요?
루터 - 알 수 없지. 그냥 울보일 수도 있어. 

루터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마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에이든 - 반응 자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반응 중에서는 눈물이 가장 흔해요.

마크 - 내가 알고 있던 좀비랑은 많이 다르네요.

마크는 좀비의 모습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칸트 - 센터 녀석들은 별세계에 살고 있는 건가? 센터 밖의 일에는 전혀 아는 게 없군.
마크는 다소 시무룩해졌다.

루터는 마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루터 - 이 녀석이 지나치게 무식하긴 하지만, 삭막한 세상에 센터 같은 안전지대가 있다는 게 위안이 되기도 한다고.
칸트 - 니들만의 세상일 뿐이지.


에이든은 잠시 눈치를 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에이든 - 그... 어린 좀비도 이 안에 격리시켜야 합니다.
루터는 아무 말하지 않고 칸트의 반응을 살폈다. 
칸트 - 앨리스를 혼자 둘 수 없어.
에이든은 칸트의 말에 당황했지만 다시 말을 꺼냈다.
에이든 - 좀비라면 예외 없이 격리시켜야 하는 것이 세손가락단의 규칙이에요.... 
루터는 세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칸트를 약 올렸다.
칸트는 철창 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칸트 - 그럼 난 이곳을 떠나겠어.
에이든은 난감해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루터 -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자네 마음에 들지 모르겠군.
에이든은 루터를 바라보며 어떤 방법인지 궁금해했다.


에이든 - 굳이 이럴 것 까지야....
마크 - 왠지 눈을 뗄 수가 없네요....

칸트는 앨리스와 함께 철창 안에 들어가 앉았다.

주변의 좀비들이 칸트를 의식하며, 그르렁거렸다.
루터 - 정말 들어갈 줄은.... 둘 사이가 너무 애틋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군.

루터는 다소 과장된 어투로 말했다.

에이든 - 내일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칸트는 아무 말하지 않고 바닥에 누웠다.

루터 - 그래도 밖에 보다는 이곳이 안전할 거야.
루터 - 그럼 잘 자라고~
마크 - 아침에 봐요....

루터 즐거운 듯 에이든을 지나쳐 앞장서서 걸어갔다.
마크가 그 뒤를 따르고, 에이든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제드의 방]

제드는 컵에 든 술을 들이켰다.
베르거와 칼은 제드의 옆에 앉아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제드는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테이블 한편을 바라보며 뭔가를 떠올렸다.
제드 - 리오(동생)는 어릴 때 겁이 많았지. 아버지와 사냥을 가면 사슴을 보고도 놀라곤 했어.
제드 - 언젠가 둘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는데 늑대 한 마리와 마주친 적이 있었어. 

제드 - 난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제드 - 그때 리오가 내 앞에 서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어. 그 모습에 
늑대는 움찔했지.
제드 - 벌벌 떨면서도 사력을 다해 소리 지르는 리오의 모습을 보니 나도 용기가 생겼어.

제드 - 우리는 함께 늑대를 향해 소리치며 나뭇가지를 마구 휘둘렀어.
제드 - 늑대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더니 숲으로 사라졌어. 두 꼬맹이가 늑대를 쫓아낸 거지.
제드 - 리오는 그런 녀석이었어. 
제드 -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제드는 갑자기 컵을 벽에 집어던졌다. 
베르거는 살짝 움찔했다.
컵은 박살이 나고, 벽에는 술이 흘러내렸다.
제드 - 허락할 수 없다.... 허락할 수 없다....!
제드 - 루터.... 이젠 그 건방진 면상만 봐도 구역질이 나. 
제드 - 그놈 입꼬리를 찢어놔야 내가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을 거야.

돌격대 칼 - 필요하다면 제가 처리하죠.
옆에 있던 베르거가 빈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베르거 - 감독관을 죽이면 센터는 우리를 적으로 돌릴 겁니다. 
베르거는 술잔을 제드에게 건넸다. 제드는 그 술잔을 외면한 채 테이블 한편에 있던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억제제가 담긴 여러 개의 캡슐이 들어있었다.

제드 - 20년 동안 치료제를 개발한다고 그렇게 많은 형제들의 피를 뿌렸는데 말이야.
제드 - 센터 놈들이 만든 거라고는 고작 이 일회용 물약뿐이야. 

제드 - 6개월짜리, 3개월짜리, 한 달, 일주일..... 이게 우리를 노예로 만들었지.
제드는 캡슐 하나를 집어 들어 또다시 문을 향해 던졌다. 그때 문이 열리며 에이든이 들어오려다 급히 문을 닫았다.
문을 타고, 약물이 흘러내렸다.
다시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더니 에이든이 안을 살피며 들어왔다.

제드는 에이든을 향해 소리쳤다.
제드 - 너는 또 그 약장수 놈이랑 시시덕거리다 온 거냐!!
주눅 든 에이든은 변명하듯 말했다.
에이든 - 그게.... 칸트가.... 감독관과 함께 이곳에 왔습니다.
제드 - 칸트? 
베르거 - 도살자 칸트?
돌격대 칼 - 죽은 줄 알았는데? 아니면 썩은 고기 덩어리가 됐거나.
제드 - 그놈은 자기 동료를 죽인 자가 아닌가?
베르거 - 여러 루머가 있긴 합니다만..... 그 자가 이 곳에 나타난 건 의외군요.
제드 - 루터, 대체 무슨 꿍꿍이지?

제드는 눈을 번뜩이며 생각에 잠겼다.



 소란스러웠던 주위가 조용해지고, 칸트는 벽에 등을 대고 앉아 구름에 반쯤 가려진 달을 바라봤다.
그때 철창 사이로 한 사내가 나타났다.

짐 - 칸트?
칸트 - 짐?

두 사람은 암호를 외듯 짧은 이름으로 서로를 확인했다.


짐 - 좀 전에 차에서 본 것 같았는데 맞았군.
칸트 - 세손가락단에 있었나?

짐 - 먹고살 길은 찾아야 했으니까.
짐 - 그런데 그 안에서 뭐 하는 거지? 이제 인간들이 아닌 좀비들과 어울리기로 한 건가? 
칸트 - 니가 상관할 바 아니야.

짐은 칸트의 옆에 있던 앨리스를 잠시 살피고는 칸트에게 말했다.
짐 - 그렇지, 넌 남의 관심 따위는 필요 없었으니까.
칸트 -......

짐과 칸트는 서로를 차갑게 응시했다.

짐 - 잠시 옛 동료를 보러 온 것뿐이야. 
칸트 - ......

짐은 옆으로 발걸음을 옮겨 한 좀비에게 다가갔다.

짐은 그 좀비를 잠시 바라보더니 송곳니로 만든 목걸이(좀비의 송곳니 - 헌터들의 장식품)를 좀비의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그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 으...어...으.....

좀비는 무표정한 얼굴로 짐을 바라봤다.


짐은 돌아서며 칸트에게 말했다.
짐 - 난 아직도 후회하고 있어.  
짐 - 그때 망설이지 않고 널 쐈어야 했는데.....

짐은 그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칸트는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별빛조차 사라진 칠흑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귓가에 어떤 멜로디가 들려오는 듯했다.

칸트는 그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렸다.
칸트 - 음 - 음음 - 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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