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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piration Feb 28. 2024

존중하고 존중받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

승무원 그만두고 스타트업 다니는 거 후회 안 해요?

어디서 누굴 만나든 존중으로 대하는 것.

이런 태도가 쌓여서 날 만든다고 생각한다. 사실 상대방만을 위해서는 아니고, 나를 존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승무원으로 첫 커리어를 시작한 덕분에 정말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마주했었다. 멋진 분들도 많이 만났고, 반대로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하루에 몇 백 명, 한 달에 몇 천명을 만나는 경험을 언제 또 해볼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흥미로운 경험이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짧은 대화로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느껴지는 감각이 좀 더 예민해졌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평가가 아닌, 결이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감각 말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먹었던 것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 격 있는 어른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성숙함은 지나온 세월과 비례하지 않는단 걸 알았다. 신체의 성장기가 끝나는 무렵부터의 성숙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나이가 들수록 밑천은 더 쉽게 드러난다. 어리니까 뭘 모른다라는 게 더 이상 통하지 않으니까.. 어리석음과 순수함, 무례함과 솔직함, 똑똑함과 현명함의 한 끗 차이를 아는 어른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두번째, 어떤 말도 절대 ‘쉽게’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 쌓여 그 사람이 되고, 또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그 사람이 보인다는 걸 알고 나니, 한마디 말하는 것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스타트업에서 고생하고 있을 때, 어떤 동료가 승무원 그만둔 거 후회 안 하냐고 물어봤었다. 오 절대. 정말 감사하게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었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던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만약 회사를 나오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면 상상해 봤을 때, 단언컨대... 지금만큼 절대 성장할 수 없었을 거다.


난 승무원 때 내가 진짜, 일을 별로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많은 손님들에게 친절한 승무원이었어도, 선배들에게 싹싹하고 친근하고 몸이 재빠른 후배는 아니었다. 진급하기 위한 점수를 미리 만들어두는 성실한 사원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곳에서 잘하고 싶은 욕심도 크게 없었다. 부끄럽지만 눈에 안 띄게 보통만 해야지, 생각했었다.


스타트업에 들어갔을 땐, 너무 일을 잘하고 싶었고 성과 내고 싶었다. 나의 가능성과 역량을 도전적인 과제에 던져보고 싶었다.

예전에 비행하면서 ‘그냥 해야 돼서 하는 일들’이 너무 싫었다. 그런 일들로 내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까웠다. 이걸 왜 이렇게 해야 하지? 이걸 진짜 해야 하는 목적이 뭐지?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하지? 이런 물음표들을 모른 척하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하나씩 사라지는 날 발견하고 퇴사를 결심했었다.


그런데 새로운 조직에서는 이 물음표를 매일 띄우고,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할수록 더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 인정과 보상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얻었다.


첫째는 성장 마인드셋을 가지게 된 것.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새로운 걸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둘째는 문제에 몰입해 본 경험들을 쌓은 것.

셋째는 높은 회복탄력성을 가지게 된 것.


어떤 고민과 고심 끝에 결심을 거쳐서 했던 결정 이후에는, 후회 없을 만큼 잘 만들어가야 할 내 몫이 따른다. 

그래서 난 후회하기 싫어서 옳은 결정이 되도록 더 몰입했던 것 같다. 알아서 잘 되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20대를 돌이켜보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과감히 행동하고 때론 피하고 작아지고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든 시간을 후회없이 잘 살아냈던 나에게 잘 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나름 난도 높은 시간을 보내온 덕분에, 누구에게도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걸 매우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무엇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어떤 사람이나 현상을 쉽게 정의하거나 폄하하고 싶지도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잘 모르니까.

새로움을 받아들일 준비의 시작은 내가 모르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가 아닐까.


앞으로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까-

누굴 대하든 존중으로 대하는 게 몸과 마음에 배어 있는 사람.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는 사람.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사람. 나를 가장 존중하고 사랑하고 책임지는 사람.


앞으로도 많은 변수가 있겠지만 이런 사람으로 살아내리라는 마음은 변치 않는 상수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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