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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eejong Sep 07. 2024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은 적 있는가

영화 '존오브인터레스트'를 보고

유튜브 채널 매불쇼에 철학자 박구용이 출연, 현 집권층의 무감각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그는 애덤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나오는 '자기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인격'이다. 이 인격이란 타인의 고통을 보았을 때 짧게나마 끔찍하고 안타깝다고 느끼는 것으로, 즉각적인 감각이나 반응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서 심지어 이 인격은 범죄를 많이 저지른 포악한 사람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현 정부가 채해병 사건, 이태원 참사, 사도광산 문제를 대하는 것을 보고 불편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타인의 불쌍함에 대하는 그들의 모습이 인간이라면 갖고 있어야 할 '인격'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인격', 즉각적인 감각이나 반응을 잃어버린 '무감각의 상태'가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과도한 권력 욕구가 '인격'을 압도해 버렸기 때문이다. 돈, 승진, 평판, 위세 등 과도한 권력 욕구를 취하기 위해, 인간이라면 누구에도 양도할 수 없는 '인격'이라는 것조차 저버리고 스스로를 '사물화' 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것은 꼭 정치인들만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도 자기를 잃고 '무감각'해지곤 하는데, 과도하게 일에 몰두한 채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근에 고양이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냐고 질문했는데, 만약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당신도 현재 무감각한 상태에 있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에 영화 존오브인터레스트를 보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 아돌프 회스의 이야기다. 그는 최대한 많은 유대인을 최소한의 시간과 비용으로 죽이는 일을 한다. 그는 워커홀릭이고, 높은 자리로의 승진을 위해서 윗선에 적극적인 로비까지 한다. 그의 가족들은 수용소 바로 옆에 사는데, 수용소와는 벽을 마주하고 있어 유대인들의 절규, 시체를 태우는 소각로에서의 소음, 유대인에게 발사된 총성 등의 소리가 집에서 들린다. 또한 시체를 태우는 연기에 기침은 물론이고, 강에서 소풍을 즐기다 수용소에서 배출한 유골과 피를 뒤집어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조금 불편할 뿐 그들의 삶은 정말 행복하다. 과거 가난하게 살던 시절을 이겨내고, 교외에 아름다운 저택에서 하인을 부리면서 부유층의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회스가 타 지역으로 발령이 났음에도, 남편만 보내고 나머지 가족들은 그곳에 계속 살기를 원한다.


제목 'Zone Of Interest' 관심영역 또는 관심지역으로 번역된다. 아우슈비츠는 나치 독일에게 관심지역이다. 그들은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이들을 수용소로 보내 죽였는데, 그 수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늘어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방법을 강구한다. 영화 초반에 회스는 수용소의 설계를 변경하는 것에 논의하는데, 가스실과 소각로를 확장하고, 수송 및 처분의 동선을 최적화하는 것들이다. 회스의 아내는 유대인들을 죽이고 그들에게 뺏은 옷가지와 장신구들을 골라 담으며 즐거워한다. 업무로서의 유대인 말살, 자기의 부를 축적하는 것에 몰입하는 것과 달리, 유대인의 고통은 그들에게 관심영역이 아니며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는 완전히 무감각한 상태이다. 아담 스미스의 언어로 말하자면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 '인격'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였던 작가 프리모 레비는 "수용소에서의 자신이 겪었던 경험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과거에 자신들이 했던 일에 고통을 느끼지 않고 자신은 일을 했을 뿐이라며 말하는 나치 부역자의 모습을 볼 때"라고 했다.


즐겨 보았던 유튜버가 이태원 참사에 대해, "이태원에 놀러 갔다가 죽은 애들을 갖고 왜 정부에 문제를 삼냐며 좌파 놀음에 놀아나지 말라"라고 했다. "놀러 갔다가 죽은 애들"이라는 발언에 소름이 끼쳐서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바로 창을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사망한 사건에 대해 애도를 하고, 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10년 전 이맘때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할 때도, 옆에서 피자와 치킨을 먹으며 조롱하는 일베 커뮤니티가 있었다. 그들은 어쩌면 우파도, 보수도, 그 어떤 이념을 갖고 있는 자들이 아니라, '인격' 즉, 타인의 고통에 끔찍함을 느끼는 그 즉각적인 반응을 잃어버린 무감각한 상태에 놓인 자들이 아닐까.


유대인 감독 Jonathan Glazer는 2024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10월 7일 이스라엘에서의 희생자들이든, 가자지구에서 계속되는 공격의 희생자들이든, 모든 비인간화의 희생자들이 발생하는 것에 우리는 어떻게 저항해야 하나?" 그러나 그의 외침은 무감각한 자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도 역시나 도달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철학자 박구용의 질문에 대답에 스스로 답을 해봤다. 나는 최근에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나. 어떤 생명의 고통에 귀 기울여 보려고 해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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