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종 Aug 14. 2018

그래서, 공유주방이 뭔데? - 06

 (번외편) 읽는 이를 위한 사업계획서 작성하기, 개념 장착 편.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최고 시청률 57%의 대박 웰메이드 드라마 대장금의 명장면을 소환해보자. 




정상궁 : 어찌 홍시라 생각하느냐?


어린 장금이 : 예? 저는.. 제 입에서는..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 온데.


정상궁 : 아 하하! 타고난 미각은 따로 있었구나! 그렇지 홍시가 들어있어 홍시맛이 난 것을, 생각으로 알아내라한 내가 어리석었다.




그리고 이 장면을 투자자와 스타트업에 비유하자면 이렇다.




투자자 : 대표님, 도대체 이 사업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거예요? 


스타트업 : 예? 아 사실 제가.. 원래 회사 다닐 때부터 아이디어가 기발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는 하는데.. 이 부분은 원래 관심이 많은 편이기도 하고.. 생각을 해보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해봤습니다.. 하핫.


투자자 : 아 그러시군요! 진짜 대단하십니다! 천재세요. 전재산을 투자하겠습니다!




간혹 사업계획서는 왜써야 되는데요? 묻는 이들이 있다. 홍시 맛이 나니까 홍시라고 했는데, 그걸 굳이 글로 써야 되나요? 대단한 장금이 나셨다.


당연히 이런 일은 없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IR자료를 요청하고, 스타트업 대표는 사업계획서를 토대로 IR활동을 통해 투자금을 유치한다. 오늘 이 번외 편은 1) 우리 회사의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면서, 2)멤버들의 사업계획서를 같이 멘토링 하면서, 3)주변 스타트업들의 사업계획서를 보고 함께 논의하면서 생각했던 사업계획서 작성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말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기술보다는 인식, 마음가짐, 개념, 정신, 자세, 근본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해보겠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확실히 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사업계획서는 오로지 투자유치를 하기 위해서 작성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알아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자신의 사업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그래서 조금이나마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고(이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잘되기만 한다면 돈을 왕창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거의 뇌피셜에 가까운 이 망상을 구체적인 액션플랜으로 나타낸 것이 바로 사업계획서이다. 사업계획서는 주요 변곡점마다 작성하고 갱신을 해야 하는데, 그 타이밍은 스타트업 스스로가 잘 판단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스타트업 창업자 스스로, 그리고 얼마 안 되는 팀원 모두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세밀하게 검토해야 하며, '회사의 비전과 미션, 각종 목표에 부합하는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그 계획에 맞는 정말 해야 하는 일인지', '조금 더 발전하기 위해서 앞으로는 어떤 일을 계획하고 해야 하는지' 등 을 도출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내부의 치열한 고민의 결과가 다른 이들에게도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투자유치가 이뤄지는 것이다.   


또 하나 첨부하자면, 잘 써진 사업계획서가 투자유치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스타트업의 대표는 회사의 50% 이상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마찬가지로 투자자들은 사업계획서보다 대표 얼굴을 보고 마음을 먹고, 될 때까지 사업계획서를 요청하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한다. 그러면 뭘 하자는 말이냐? 이것도 역시 될놈될인 거냐?라고 물으신다면, 그건 아니고 얼굴만 보고 투자하기는 좀 그러니 사업계획서가 기본은 돼서 대표 얼굴을 좀 받춰져야 된다는 것이다. (지극히 내 생각이다.)


갓날두, 메친놈, 갓연경은 팀 전력의 50% 이상이다. 근데 축구는 6명 이하가 되면 몰수패다. 배구는 모르겠다. 그러니까 기본은 되야 호날두도 '호~우'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첫 번째는 굳이 따지자면 사업계획서는 일기가 아니라 편지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나에게 쓰는 편지, 마니또, 행운의 편지 제외) 나는 다 알고 있지만 혹시라도 잊지 않게 나중에 복기하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입장을 정말 십분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한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사업계획서라는 편지를 통해 다른 사람(읽는 사람)을 낚아야만 한다.  


공유주방의 멤버들이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이렇다. 제가 하려고 하는 아이템은 이건데요, 이게 몰라서 그렇지 알고 보면 짱입니다. 왜냐고요? 제가 해외에 있을 때, 제가 회사생활할 때, 제가 취미가 이건데, 이게 꼭 필요한데 없더라고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본인 좋으려고 그거 만드시는 거예요? 물론, 나로부터 시작해 고객까지 나아가는 서술방법은 굉장히 설득력 있고 좋다. 그렇지만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나'가 아닌 '고객'의 입장이다. 반드시 '고객'까지 나아가야만 한다.  단순하지만, 결국 돈을 지불하고 그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고객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바로 이 지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고객'의 범위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혹시 틀에 박힌 기계처럼 일하는 회사생활이 싫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스타트업을 하고 사업계획서를 쓰는 사람이 있다면 이점을 말하고 싶다. 스타트업은 그 하기 싫은 일을 계속 만들어 내고, 또 동시에 그렇게 싫었던 조직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스타트업이 아니라 예술을 하시고, 투자가 아니라 후원을 받기를 권장한다. (물론 예술로 대박을 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예술 같은 일이다.)


ㄴ ㅐ 사업.. ㄱㅖ획ㅅㅓ는.. ㅁ ㅓ리가 ㅇ ㅏ 닌 맘으로.... 이해 ㅎ ㅏ 기 를....


두 번째는, 식상하지만 컴퓨터 앞에서 피피티와 엑셀을 켜고, 될 때까지 앉아서 견디는 자세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견디는 것이 업무역량에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내 성에 안차서, 팀원들이 봤는데 별로라서, 기껏 다한 것 같은데 VC들이 요청하는 게 또 있어서, 끝없이 수정 수정 수정해야 한다. (나중에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중에서 '내 성에 안차서' 이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가 생각했을 때 뭔가 부족하다 싶으면 남들이 봤을 때는 정말 구린 거다. 그리고 이만하면 됐지 싶으면 남들이 봤을 때는 그냥저냥의 이해가 갈랑말랑하는 사업계획서고, 하도 많이 만들어서 이젠 진짜 나조차도 뭐가 뭔지 모를 때쯤 이해하는 사람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요지경이다. '팀원들이 봤는데 별로라서'라는 부분은 투자유치보다는 조직의 일하는 방식과 더 관계가 깊지만, 어찌 내부의 동료조차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업이 외부의 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을까? 같이 일하는 팀원들을 이해시키는 과정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VC들이 요청하는 게 또 있어서'의  부분은 굉장히 짜증 나지만 그래도 도움이 된다. 조성된 펀드가 달라서, 타 회사와의 협업을 만들기 위해, 본인들이 봤을 때 더 큰 기회가 보여서 등 수정 요청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래도 여러 부분을 강조해서 쓰다 보면 그동안 생각하지 못해던 것들을 체크해 볼 기회를 얻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분명 있다. 

이번 투자라운드를 위해 IR자료를 작성하는데 5개월이 걸렸다. 5. 개. 월. 그래도 성공했으니, 보람이 없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엄청난 공을 들여 만든 이 피 같은 사업계획서에 대한 애착을 버려야 한다. 사업계획서는 용도에 따라 수시로 변경되어야만 한다. 그동안 겪어본 바로는 내부 전략 수립용, IR용, 데모데이용 크게 3가지가 필요한데, 각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부분에 있어 많은 변화가 수반된다. 말투, 이미지, 내용의 깊이, 구성 등 여러 요소가 달라져야만 한다. 영혼을 갈아 만든 피 같은 내 새끼를 또 바꾸는 게 심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 일 수도 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실 모두 처음 보는 자료다. 그러니 괜한 고집부리지 말고 바꾸자.


전략 수립용으로 작성한 사업계획서는 방향성과 구체성이 중요하다. 실무자들이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어떤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깊이가 있어야 하며, 동시에 그들이 파나가야할 디테일에 대한 여지는 또 남겨두어야 한다. (적어도 스타트업에서는 그렇다. 아 어렵다.) IR용은 막힘없이 읽혀야 할 흐름이 제일 중요하고 투자자들이 유의 깊게 보는 파트에 대한 첨부자료가 준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종 일러스트나 도표 등을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데모데이용은 후킹 포인트를 고려해야 한다. 길어야 10분 정도 되는 발표시간, 쉽게 산만해지는 청중들을 고려하면, 그들의 뇌리에 깊게 박힐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해야 되며 디테일을 보여주기보다는 디테일을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회사 워크숍 때 작성했던, 공유주방의 매출 시뮬레이션. 가정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이게 진짜 될까? 싶다. 하지만 되게 만들어야 한다.



IR자료 중 일부. 2편에 작성했던 공유주방의 개념을 VC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식화 했다. 간단한 일러스트는 PPT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다보면 재밌다.



롯데 데모데이 때 사용했던 발표자료. 최대한 직관적이고 눈에 띄는 형태로 자료를 구성했다. 목적은 '괜찮은데? 한번 미팅해봐야겠네!' 라는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어째 개념을 장착하였는가? 그러면 구체적인 기술에 대해 알아보자. 다음주에!


작가의 이전글 그래서, 공유주방이 뭔데? - 0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