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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린다 Apr 24. 2024

고단한 밤. 과분한 존중.

현재 시각 0시.

막차 직전의 왕십리행 분당선.

승객들은 한 두 자리씩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눈 감았다 뜨면 집이길 바라면서.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벌써부터 고단하여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와 한 자리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던 여성이 말을 걸었다. 60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다. 7호선 지하철이 아직 다니냐고 여쭤보셨다. 잠깐 바라본 얼굴이었지만 새하얀 피부와 옅은 주름이 참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새벽이 시작되는 시간임이 무색하게 깔끔한 머리와 옷차림도 인상적이었다. 7호선으로 갈아타고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된다며 차분히 내가 검색하는 걸 기다려주셨다. 다행히 아직 지하철이 다니고 있어서, 심지어 막차는 50분이나 뒤에 끊겨서, 좋은 인상의 여성께 좋은 소식을 전했다. 이에 돌아온,


"고마워요"
한 마디에 과분한 존중을 받은 듯 민망했다. 황급히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끼고 까만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온화한 여성이 내려야 하는 다다음역에 도착했다. 왠지 그녀가 인사를 건넬 것 같아서 나도 인사에 화답하고 싶어서 공허한 이어폰을 슥 뺐다. 역시나 우리는 가벼운 작별 인사를 나눴다. 공기가 찹찹한 늦은 밤 부디 헤매지 않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하시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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