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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Mar 08. 2023

"엄마"라는 대명사, 그 존재에 대한 편견.

고전 질문 독서 [앵무새 죽이기]

우리 엄마는 내가 두 살 되던 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식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지방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어린이집에 다녔다. 주위에는 오래된 아파트 몇 동이 있었고, 한쪽으로는 밭이 휑하니 있는 그런 풍경의 어린이집이었다. 작은 아이는 3살, 4살, 큰아이는 6살, 7살을 이곳에서 보냈는데 원생이 적어서 6,7세는 통합반으로 이루어졌다. 이번에 졸업한 아이들도 9명에 불과했다. ​


어린이집에 부모 참여 수업이 있어 방문했을 때 일이다.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가 자기들이 놀고 배우는 어린이집에 오는 것이 얼마나 설레고 좋았는지 다들 표정이 상기된 듯했다. 내가 큰아이 옆에 앉아 있었는데, 한 친구가 내 아이에게 자랑하듯 자기 엄마를 소개했다.


"구*아! 우리 엄마야"


엄마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는 말투였다. 누구에게나 있는 엄마를 꼭 자기만 가진 것처럼 엄마의 팔짱을 끼고 엄마의 몸에 자기 몸을 바짝 붙이며 아주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참에 아이 친구 엄마와 안면 좀 틀까 싶어서 아이의 말에 끼어들어 인사했다. 그런데 나는 금방 무안해지고 말았다. 내가 너무 눈치가 없었나, 아이 엄마는 내 시선을 피했다. 되돌아오는 인사가 없었다. 오히려 나를 피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조금 민망해진 나는 "Y가 엄마를 무지 많이 사랑하는구나!" 하고 아이에게만 한마디 더 했을 뿐이었다. ​


한 계절이 지나 그다음 부모 참여 수업이 있어 어린이집에 방문했을 때는, 우리 아들이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Y에서 K라는 아이로 바뀌어 있었다. 이번에도 K가 자기 엄마를 자랑하듯 말했다.


"구*아!! 우리 할머니야~!!"


말하면서 옆에 있는 할머니 목을 당겨 끌어안았다.

나는 잠깐 머릿속에서 재생 정지 버튼을 눌렀다. '응? 할머니라고? 근데 되게 젊다!'

할머니라는 소개를 듣고 보니 달리 보이긴 했다. 정말 젊고 패션 감각이 뛰어난 할머니구나, 그런데 어째서 K는 할머니가 온 걸까. ​


그 뒤로 그 두 번의 만남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Y의 엄마는 왜 내 인사를 무시했을까. K는 왜 할머니랑 왔을까. 첫 번째의 경우는 아이이에게 뭐라고 질문해야 할지 몰라 그냥 두었는데, 그로부터 거의 2년이 지난 몇 달 전, Y의 엄마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게 됐다. 구현이가 어린이집에 다녀와서 재잘재잘 떠드는 중에 Y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오늘 어린이집에 안온 친구들이 많아."

"그래? 누가 안 왔는데?"

"누구도 안 왔고 누구도 안 왔고 Y도 안 왔어."

"왜 안 왔을까? 친구들이 많이 없어서 심심했구나! 내일은 다 올 거야."

"아니야 Y는 계속해서 안 올 거래 2주 있다가 온대."

"그래? 어디 갔는데? 여행 갔나 보네? 좋겠다!"

"응, 엄마 나라에 놀러 갔대."

"오! 정말? 엄마나라가 어딘데??"

"따뜻한 나라래!"


내가 말을 걸어도 한국말을 할 줄 몰라서 어쩔 수 없이 등을 돌렸던 거라고 이해다. 엄마를 자랑하는 아들 앞에서 어눌한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 거라고, 내 마음대로 결론지어 생각했다.


그리고 K의 경우는 그냥 대놓고 우리 이한테 물었었다.

"K는 왜 할머니가 오셨대? 근데 할머니 되게 젊고 멋쟁이더라."

"K는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아빠랑 산대"

"그래? 엄마는 없대?"

"응 없대."


너무 술술 대답해 주니 나는 질문을 끊지 않고 그냥 궁금한 걸 여과 없이 계속 물었다


"왜 없어?"

"아빠가 엄마랑 헤어졌대."

"아, 정말?"

"엄마랑 아빠랑 옛날에 싸웠대"


일단 궁금했던 게 해소되었지만, 이가 이야기해 준 사실들이 솔직히 조금 놀라웠다. 이런 대화를 아이들끼리 아무렇지도 않게 다 나눴다는 거 아닌가? K는 슬프지 않았을까? 왜 다른 애들은 다 엄마가 있는데 나는 없을까 하고 속상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편견으로 가득 찬 '라는 한 어른의 생각일 뿐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Y나 K 에겐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엄마이고 할머니인 것을. 아이들의 상황을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고 조금이라도 측은지심을 가졌던 내가 너무 부끄럽다. K와 Y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 같은 어른들의 측은지심을 끝까지 눈치채지 않기를 바란다. 그로 인해 상처받거나 누군가를 원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또한, 나의 쓸데없는 측은지심이 누군가의 의식을 부러 깨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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