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메이징 그레이스 Mar 09. 2023

가진 것만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훌륭한 걸까요?

고전 질문 독서 [앵무새 죽이기]

커닝햄 사람들은요, 무엇이든 갚을 수 없는 물건은 받지 않아요. 그 사람들은 어느 누구한테도 아무것도 받은 적이 없어요. 그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걸로 그럭저럭 살아간답니다.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그렇게 살아가세요.





커닝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아주 잠깐. [앵무새 죽이기]의 시대적 배경은 약 100년 전이다. 그때는 그랬는지 모르겠다. 현대를 살아가는 방식도 과연 가진 것만으로 살아가는 게 훌륭할까? 일단 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훌륭하다'라는 평가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남편이 어느 날, 일을 저질렀다. 남편은 큰 그림을 가지고 실행한 일이었겠지만 내가 볼 땐 그저 일을 저질렀을 뿐이다. 일단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 자세한 내막은 생략하고, 엄청난 대출을 끼고 서울에 원룸 건물을 하나 샀다. 은행 빚이 엄청나게 생겼고 부동산 중개 수수료며 세금으로 큰돈이 나갔다. 한숨을 쉬는 나를 보고 하는 말이, '세금 아까워하면 부자가 될 수 없어'라고 했다. 아내의 마음을 살피려는 생각은 1도 없어 보였다. 이걸 내가 개입하려 하니 머리가 터질 듯 아파서 그냥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약 2년 후, 우리는 지금 그 원룸 건물의 맨 꼭대기 층 주인세대에 이사와 살고 있다.


이 건물을 살 때 매도인이 월세 전세 골고루 맞춰 놓고 이대로만 유지하면 월평균 200만 원 이상의 수익이 날 거라고 했다. 남편도 연금 만들어놨다 생각하라고 했다. 그래, 그렇게만 된다면 남편이 저지른 일을 투자로 인정해 줄 만했다.


그런데 월세 수익을 연금이라 생각하라던 남편은 월세를 모두 전세로 바꿔버렸다. 월세수익은커녕 건물 대출이자를 갚고 나면 심각한 마이너스다. 남편은 이제 와서 후회하는 듯하다. 시기적으로 전세 문제가 커지자 다시 월세로 전환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주인세대 전세 보증금 빼주고 우리가 이사를 들어왔기에 여윳돈이 없다. 무슨 수로 월세화를 한다는 건지 답답했다.


얼마 전 세입자가 두 명이 바뀌었는데, 남편의 말대로 조금씩 월세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요즘 전세사기 문제 등으로 전세를 찾는 사람이 줄어들어 자연스러운 변화가 생긴 것이다. 문제는 전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이 없다는 거였다.


한 집은 보증금 2천만 원이 필요했고 한집은 4천만 원이 필요했다. 남편은 시아버지께 4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러면 그로 인해 생기는 월세 수익 40만 원을 드리겠다고 제안했다. 시아버지는 흔쾌히 받아들이시고 오히려 좋아하셨다고 했다. 시아버지도 수중에 돈이 없어서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4천만 원을 빌려주셔야 하는 상황인데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에게 40만 원을 받으면, 매달 이자를 갚고도 15만 원 정도가 남는다며 오히려 좋아하셨다고 한다. 이런 시아버지의 성향을 이해하는데 최소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무튼 중요한 사실은 지금의 나는 시아버지의 결정을 이해한다는 데 있다.


다른 2천만 원은 장모님한테 부탁해 보자고 했다. 장모님에게도 월세 수익 20만 원을 매달 드리자며. 난 엄마의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다. 2천만 원은 빌려주겠지만 20만 원은 받지 않겠다고 하실게 뻔했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남편에게 "엄마는 20만 원 안 받으시겠대. 우리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하시는데?"라고 말을 전했더니, 말도 안 된다고 무조건 드려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장모님도 분명히 매달 20만 원 받으면 좋아하실 거란다. 사위 덕분에 돈 벌게 됐다며 큰사위 최고라고 하실 거란다. 시아버지까지는 이해하겠지만 저런 남편의 말은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다. 왜 저렇게 모든 사람들을 자기 기준에서만 생각하는지, 나는 또 한숨이 나왔다. 엄마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돈을 빌려주고 안 빌려주고를 떠나서 엄마는 지금 우리 걱정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우리가 돈이 없어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거라는 생각에 걱정돼서 잠도 못 자고 있을게 눈에 훤했다. 남편을 설득하느냐, 엄마를 설득하느냐인데 후자가 훨씬 쉽겠다는 판단하에 엄마에게 전화해서 상황 설명을 자세하게 했다. 그리고 시아버지의 경우도 이야기해 줬다. 엄마는 참 신기한 사람들이라는 반응이다. 엄마는 여윳돈이 없었으면 2천만 원을 빌려주는 일은 없었을 거다. 대출은 엄마의 선택 옵션에 없다. 만약 2천만 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만한 돈도 없어서 큰딸을 도와주지 못하는 못난 엄마라고 자신을 엄청 자책하고 속상해했을 것이다. 한편 시아버지는 4천만 원이 없지만 우리 엄마와 같은 생각은 절대 안 하실 거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수익이 남은 일이라면 기꺼이 하신다. 그리고 남편의 말대로, 돈 벌 기회를 만들어 준 막내아들 최고다,라고 하실 분이다.


약 5년 전 즘엔, 시댁 식구들의 생활 방식을 보면서 '참 피곤하게 산다' 생각했다. 지금은 오히려 우리 엄마가 참 피곤하게 산다 싶다. 나는 시아버지처럼 생각하지 못하는 엄마가 조금 가엽기도 하다. 그래서 엄마한테 20만 원 무조건 받으라고 강요 아닌 강요까지 했다. 하지만 또 한 번 엄마의 행동을 예상해 보면, 매달 우리에게 받은 20만 원을 고스란히 모아서 우리가 2천만 원을 돌려주는 날 우리에게 줄 것이다. 그러면 정서방은 그 돈을 또 장인어른 통장으로 입금하겠지.


시아버지의 방법도, 우리 엄마의 방법도 다 이해는 한다. 누가 옳고 그른 건 없다. 그저 두 분이 살아오신 방법으로 자신들의 돈을 사용할 뿐이다. 다만 '가지고 있는 것'의 기준에 의문이 들었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까지가 가지고 있는 것일까, 지금 내 손 안에는 없지만 돈을 빌려올 수 있는 능력과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인드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 사실 그 시대의 어른들이 대부분 그렇듯, 시아버지도 살아오신 삶의 방식은 우리 엄마랑 다르지 않았었다. 아버님은 돈을 사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깨닫고 삶의 방식을 바꿔가신 것이다. 그 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도 삶의 방식 중 하나인 셈이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라는 대명사, 그 존재에 대한 편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