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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의인사 Dec 14. 2023

피지 않는 붉은 꽃

내 맘 속에선 이미 활짝 핀

나에겐 피지 않는 붉은 이 있다.

십수 년이 지났지만 그대로다.

드라이 꽃도 아니고 비누 꽃도 아닌 붉은 꽃.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이 붉은 꽃을 주었는지는 기억이 난다.

바로 우리 할머니.


신혼 초에는 친정에 며칠씩 머무를 때가 자주 있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그날도 아마 춥다고 징징거렸을 것이다.

할머니는 옷장, 할머니의 표현을 빌리면 '농'에서

니트를 건네주셨다.

짙은색 바탕에 화려한 장미꽃이 수없이 박힌 니트.

일단 급하니 입긴 입었지만 촌스럽기 그지없다고 비웃었다.


할머니는 "이 옷 진짜 따시대. 옷도 안 피고 좋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촌스럽다.

그래도 난 "응, 잘 입을게."라는 감사인사를 남겼다.


집에 가져왔는데 손이  가질 않아 옷장 저 안쪽 어딘가에 화려한 붉은 꽃 니트는 꽁꽁 숨겨져 있었다.

그러다 임신을 했고 옷 정리를 하다가 화려한 붉은 꽃 니트를 발견했는데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 보고자 다시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거 굉장히 따뜻하다. 분명 그땐 이 정도였을까라고 내 기억을 더듬어볼 정도로 따뜻하다.

그 이후 화려한 붉은 꽃 니트는 겨울만 되면 등장하는

내 최애템이 되어버렸다.


최소 10년은 더 된 이 옷은 정말 할머니 얘기처럼

피지를 않고 그 모습 그대로다.

어쩜 옷이 피지도 않고 그 모습 그대로일까.

물론 세월의 흔적으로 구멍이 난 곳은 여기저기 보인다.

하지만 화려한 붉은 꽃 니트의  따뜻함에 보낼 수가 없다.


남편은 이 옷 좀 어떻게 해보라며 웃지만

이젠 이 옷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있기에

더 이상 건들지 않는다.


화려한 붉은 꽃 니트는 이번 겨울에도 건재하다.

내복 위에 피지 않는 붉은 꽃 니트를 입으면 난 그 어떤

추위에도 굳건하리.


찢어지고 구멍이 나면 꿰매면 된다.

피지 않는 영원한 붉은 꽃만큼은 건재하다.

그럼 됐다.

할머니가 나에게 전해준 피지 않는 붉은 꽃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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