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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LA 폭동의 하얀 방관자

by 김재완

적어도 그 해 LA경찰은 색맹이 아니었다.

<로드니 킹 사건>

91년 3월 3일, 25살의 청년 로드니 킹은 LA의 한 도로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랩 음악을 들으며 도로를 질주하는 그는 면허취소 수준의 음주상태였다. 곧이어 LAPD 순찰차량들이 무전을 주고받으며, 로드니의 흰색 차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저거 술 아니면 마약에 취한 것 같은데? 운전석 확인 했어?”

“어! 고릴라 같은 검둥이 새끼야! 오늘 야구 한 게임하자고!”

“좋아!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홈런 한 방 날려야겠어.”


흑인청년 로드니 킹의 차를 세우 이들은 3명의 백인과 1명의 히스패닉 경찰들이었다. 로드니가 차에서 내리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LAPD들은 마치 야구를 하듯 로드니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81초 동안 이어진 56차례의 구타로 인해 로드니는 다발성 안면골절, 다리 골절 등으로 총 11군데가 골절되었고, 뇌손상에 청각 장애를 앓게 된다. 무려 20 바늘이나 꿰맨 얼굴은 부모도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로드니가 완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구타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맞은편 아파트 발코니에 서 있던 ‘조지 홀리데이’라는 인물에 의해 촬영되었는데, 영상 속 경찰들은 경찰봉과 테이저 건으로 짐승을 사냥하는 듯 보였다.

“와우! 너 이번에 완전 빅 샷이었어.”

“역시 홈런이 제 맛이야.”

훗날 공개된 경찰들의 무전 교신내용은 시민을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로 동물을 사냥하는 악마들의 목소리였다.


흑인청년 로드니가 백인 경찰들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동안 그의 차에서는 래퍼 아이스 큐브의 ‘블랙 코리안’ 이 흐르고 있었다. 무려 백만 장이 넘게 팔린 앨범에 수록된 이 노래의 가사는 상점에 물건을 사러 가는 흑인들을 한인 주인들이 도둑처럼 의심하고, 심지어 물건 값을 지불해도 잔돈을 던지며 자신들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며칠 후, 로드니 킹이 백인 경찰에게 사냥당하는 이 장면은 KTLA채널 5를 통해 여과 없이 방송되며 흑인커뮤니티는 분노에 휩싸인다.

“저! 미친 흰둥이 새끼들”

“또 시작이구나. 운전자가 백인이었어도 저렇게 했겠어?”


<두순자 사건>

행운은 드물게 오고 불행은 몰려오는 것이 인생의 법칙이다.

1991년 3월 16일, 15살의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가 LA의 한인상점에 들어섰다. 이미 흑인강도들에게 피해를 입은 바 있는 주인 두순자는 십 대 소녀에게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라타샤가 오렌지 주스를 자신의 가방에 집어넣었다.


“뭐 하는 거야!”

“깜짝이야! 저 도둑 아니에요. 매대 앞으로 가서 계산하려고 했어요.”

“웃기지 마!”

“저기요! 흑인이라고 다 도둑이 아니거던요!”


두 사람의 언성은 점점 높아졌고, 계산대 앞에 마주 선 둘은 급기야 몸싸움까지 벌이게 되었다. 고성이 오가며 서로를 밀치던 중 라타샤가 휘두른 가방에 맞은 두순자는 계산대 아래 있던 총을 꺼내 발사했다. 너무나 짧은 순간이었다. 이성을 잃은 두순자의 총격으로 한 소녀의 인생이 그 자리에서 증발했고, 자신 또한 16년 형을 구형받게 되었다.


그런데 두순자에게 내려진 재판결과에 흑인 커뮤니티는 다시 한번 충격에 빠진다.

“검사 측에서 피고에게 16년을 구형했지만, 이는 계획살인이 아닌 충동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본 법원은 피고 두순자에게 5년의 보호감찰과 4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합니다.”

한 달 사이 일어난 두 사건의 피해자는 공교롭게도 흑인이었고, 언론에서 두 사건을 자극적으로 다루며 흑인사회에서는 백인과 더불어 한인에 대한 적개심이 커져갔다. 그렇게 마지막 발화점이 될 ‘로드니 킹’ 재판의 날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었다.


<코리아 타운 형성과 피해지역 커뮤니티>

미국은 이민자가 세운 나라이며 미국 내에서도 가장 다양한 민족이 사는 곳 중에 하나가 LA이다. 1968년 미국의 이민법 개정으로 한인들의 미국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인들은 폭동의 주요 거점이 되는 LA의 사우스센트럴 지역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고학력, 고소득자였더라도 이민 1세대는 영어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이 미국에서 자녀를 키우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은 세탁소, 주유소, 작은 상점 등의 자영업뿐이었다.

“일단 그쪽이 임대료가 싸니 거기서 장사를 시작해 보자고.”

“여보! 그런데 흑인 거주지역이라 너무 위험하지 않아요?”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리게 생겼어. 그리고 여기 미국이야. 세계에서 제일 안전하고 잘 사는 나라라고.”


그렇게 한인 타운에서 차량으로 20분 거리의 LA 사우스 센트럴 지역에는 한인상점들이 하나둘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92년 당시 외무부 조사에 따르면 LA에 거주하는 한인의 수는 43만 명에 이르렀고, 그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무려 1만 2천여 개에 달했다. 회집과 해장국집에 떡집과 방앗간까지 있었던 LA가 서울특별시 나성구라고 불린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흑인거주 지역이었지만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었다면 한인과 흑인 사이에 큰 갈등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 이 지역은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었다. 특히 흑인들의 실업률은 날로 높아져갔고, 범죄율도 함께 우 상향 곡선을 그렸다. 여기에 한인들이 흑인 대신 주로 히스패닉계들을 종업원으로 고용하니, 흑인들은 한인들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본다고 느꼈고,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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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글을 쓰고 때때로 방송과 강연장에서 말을 하며 살아가는 낭만 아조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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