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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랑 Apr 06. 2023

선택적 효녀

_ 아내의 이야기(5)



우리 딸 체리는 엄마와 아빠를 구분 없이 좋아하는 아이다.



엄마는 정서적으로 놀아주고 아빠는 육체적으로 놀아준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우리 집의 경우 딱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 덕분에 엄마한테는 말할 것도 없이 하트뿅뿅이고, 거실의 월패드에서 "차량이 도착했습니다"라는 알람이 울리면 "아빠!"를 몇 차례 외칠 만큼 아빠를 좋아한다. 아직 "엄마, 아빠"라는 말이 서툰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제목처럼, 체리는 선택적 효녀다.



체리는 정말 신기하게도, 엄마가 외출을 하고 아빠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되면 낮잠을 잔다. 지난 주말, 절대 낮잠을 잘 시간이 아닌 시간에 외출을 했다. 그 시간은 밥을 먹을 시간이었다. 점심은 잘 먹고 있는지 궁금해서 연락해 봤더니 "체리 자고 있는데?"라는 태연한 남편의 대답이 돌아왔다.



볼일을 마친 뒤 귀가하면서 다시 전화를 해도 여전히 자고 있는 우리 딸. 결국 엄마가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에서야 잠에서 깨서 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피할 수 없는 전쟁 같은 체리와의 식사 시간을 함께 하게 되었다. (체리는 밥을 정말 안 먹는 아이다.)



이외에도 체리는 아빠에게 엄청난 효녀다.



요즘 재접근기이라서 그런지, 아픈 까닭인지 혹은 그냥 그러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 곁을 떠나지를 않는다. 주양육자는 내가 분명하지만 체리는 아빠도 좋아하는 것도 분명한데, 요즘은 아빠랑 놀 때도 내 품에 안겨서 논다.



덕분에 체리아빠는 요즘 노 났다, 노났어!



말로는 체리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고 하지만, 2년을 함께한 덕분에 숨겨진 표정을 읽을 수 있다. 남편은 지금 분명 살짝 설레고 있다.



어깨에 파스까지 해가며 포대기로 체리를 업고 있는 내 옆에서 소파에 누워 핸드폰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체리가 아빠만 좋아하네!!"라는 말이 입 밖으로 안 나올 수 없다.



체리는 엄마가 좋아서 꼭 붙어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빠가 좋아서, 아빠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싶어서

엄마가 좋은 척 연기하는 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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