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남편의 이야기(4)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딸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아빠가 되고 싶었나 봐"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벅차오름이 가슴속에서부터 훅 올라와서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얼마 전 엄마와 함께 간식을 먹으며 놀고 있는 딸을 보면서 다시 한번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딸은 얼마 전 첫돌을 맞이했다. 며칠 전 세종시로 영유아 검진을 다녀왔는데,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는 결과를 받았다. 지난 검진 때 몸무게가 상위 1% 였는데 살짝 빠져서 3%가 되었다. 딸이 요즘 밥을 잘 안 먹는다 싶었는데 상위 1% 타이틀을 내주게 되었다.
하루 종일 열심히 기어 다니고, 소파와 엄마 아빠를 잡고 일어나고, 읽을 줄 모르는 책을 장난감처럼 잘 가지고 놀고, 때론 안 놀아주는 아빠에게 삐치기도 한다. 끝난 줄 알았던 이앓이는 다시 시작이다. 아직 이가 6개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다. 딸의 이앓이가 시작되면 아내와 나의 수면시간은 하루 3~4시간으로 급격하게 줄어든다.
신생아의 본분인 울고 먹고 싸고 자는 것만 하던 아기가 벌써 이만큼이나 성장한 것을 보면 신기할 때가 많다. '아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하니 어린 시절의 모습을 눈에 잘 담아둬'라던 이웃들의 말씀을 자주 떠올리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사진과 동영상도 더 열심히 찍고 있다. (이 핑계로 최근에 휴대전화도 바꿨다.)
자신의 가치관과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일찍부터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싶었다.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유전자에 따른 인간의 본능이니까' 등의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과 우리를 닮은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면 남은 인생이 더욱 다채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이 때문에 힘들고 지치는 일도 마주할 게 분명하고 인생의 난이도가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살면서 결혼과 육아는 꼭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 아주 신나게 사서 고생 중이다..
결혼하기 전에 아내와 했던 대화가 생각난다. 우린 결혼을 하면 아이를 꼭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면, 평생 원하는 사람들과 연애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면, 나는 굳이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아."
주위에 딩크 친구들이 꽤 있기에 이 생각 또한 정답은 아닐 텐데, 아내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신기했다.
그렇게, 그 당시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우리의 딸이 엄마 아빠를 결혼시켜 주었다.
얼마 전 아내에게 대뜸 "나는 체리 엄마보다 체리를 더 많이 사랑하는 거 같아!"라는 말을 했는데, 아내가"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며 내심 서운해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내가 서운하지 않도록 애정표현을 아끼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