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은 이렇게 시작되는 건가보다.
_ 아내의 이야기(4)
체리를 남편에게 맡기고 놀러 나간 적이 손에 꼽힌다.
물론 남편도 저녁에 놀러 나간 적은 한두 번뿐이다.
온종일 육아를 하고 나면 심신이 고달파서 집에서 쉬거나 친구들을 만날 법도한데, 체리를 재우고 나면 육아하는 시간만큼이나 바쁘게 쌓인 일들 때문에 그러기가 도통 쉽지 않다. 남편 역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같이 식사를 하고 체리 목욕을 시킨 후에 공부방에 들어가 공부를 한다. 체리도 하루하루 눈에 띄게 성장하느냐고 우리 가족 중에서 제일 바쁘다.
이런 바쁜 생활을 유지하던 중 어느 날, 직장 동료의 청첩장을 받는 저녁 약속이 생겼다. 약속 당일, 체리는 이앓이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저녁을 먹여야 할 시간에 내가 외출을 해야 했다.
사실, 우리 집에서 가장 힘든 육아 시간은 체리의 식사 시간이다. 체리는 밥을 정말 잘 먹지 않는 아기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라는 눈초리를 보냈다.
2시간 정도 외출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은 녹다운되어 있었다. 이앓이로 힘들어하는 체리는 1시간 동안 밥을 세 숟가락 밖에 먹지 않았고, 1시간 내내 울고 불고 눈물 짜고 콧물 짜고 난리난리였단다.
남편의 힘들었다는 한마디에 "힘들지? 고생 많았어. 이제 좀 쉬어!"라는 위로와 격려가 아닌 "내가 이렇게 맨날 힘들어. 난 24시간이 이래"라는 날이 선 말이 나왔다. 남편도 "나는 하루종일 회사에서 일하다가 와서 육아하는 거잖아"라는 날 선 말로 받아쳤다.
우리 부부는 1년 간의 연애, 2년 간의 신혼생활 중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서로 서운한 일이 있을 때 바로바로 풀기 때문에 와당탕탕 싸운 적이 없다는 말이다.
이날은 각자 회사와 육아로 인해 서로 힘든 시간을 보낸 까닭인지, 이상하게 서로가 던진 뾰족한 말로 대화를 끝맺음 지었다. '부부싸움이 이렇게 시작되는 거구나, 말 한마디가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다음날도 평상시와 같이 아침을 맞이했지만 우리 부부 사이에 얇은 벽이 있는 것 같았다.
체리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카페에서 할 일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잠깐 근처에 볼 일이 있는 김에 들렸다면서 페레로로쉐 세 개짜리를 건네며 다가왔다. 이렇게 우리 사이에 아주 얇은 벽이 사라졌다.
눈치 빠른 남자와 살면 싸움을 하려야 할 수가 없다.
너무 힘들어서 '나 너무 힘들다'는 말을, '우리 집에서 안 바쁜 사람이 어디 있냐'는 차가운 말로 받아칠 때가 있지만, 그래도 '남편과 체리는 나보다 더 바쁘겠지'라고 마음을 다독이며 내가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려 한다.
눈치 빠른 체리아빠는 내가 힘든 기색이 보이면, 설거지하는 내 뒤에 와서 한 번씩 꼭 안아주곤 한다.
그래,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