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이야기
드디어 고대하던 방학식이 다가왔다. 자리에 앉아서 집에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독서 기록지 필요한 사람?”
나는 그 말을 듣고 별생각 없이 말했다.
“저요”
“몇 장 줄까?”
“10장이요”
선생님은 당황하시더니 종이를 챙기러 가셨다. 그리고 방학 안에 책 10권 읽기라는 임무가 생겼다.
당장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책을 좀 읽었었지만 2학년이 돼서 안 읽고 있었다. 그래서 이참에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10장을 질러버렸다. 하지만 뭘 어디서 읽을지 하나도 생각을 안 한 상태였다. 그래도 남아일언 중천금이라고 했으니 어디서 읽을지 좀 생각을 해보자 떠오른 곳이 집이었다. 근데 집에서는 딱 봐도 안 읽을 게 뻔해서 정한 곳이 학교 도서관이었다. 학교 도서관은 방학에도 여니 집에서 말고 도서관에서 읽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아까 나간 선생님께서 들어오셨고 내 손에는 도서 기록지 10장이 들려있었다.
방학 첫 주가 되자 도서관에 나가기 시작했다. 행사 때문에 하루 1~2시간 정도만 읽을 수 있었지만, 꽤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다음 주가 되어서 도서관에 가니 도서부원들이 뭔가를 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책 점검? 같은 거였다. 그래서 도서부원이었던 내 친구도 만날 수 있었다. 그 녀석은 내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한 친구였는데 중학교 때는 3년 내내 반이 갈려서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말이 잘 통하는 건 (부분) 사실이다. 지각한 그 녀석이 도서관에 들어오자 나는 말을 걸었다.
“와 도서부장이라는 놈이 첫날부터 지각이네?”
“... (손가락 욕)”
“아니 늦은 주제에 욕은 아니지, 선생님 이거 보셨어요?”
“아유,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러더니 그놈은 책 진열대로 가서 책 한 권을 꺼내 나에게 보여줬다. 그 책의 제목은 <네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였다. 나와 그놈은 그 자리에서 폭소했다. 녀석은 그 책 위치를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쓸데없이 치밀한 놈이다. 또 웃는 건 얼마나 경박스러운지 말보다 웃음소리가 더 웃겼다. 그때 사서 선생님께서 빨리 일하지 않느냐고 말하시자 놈은 능글맞게 책꽂이로 갔다. 작업은 바코드 리더기를 들고 책에 있는 바코드를 찍는 일이었다. 나는 그놈을 따라다니며 대충하는 것 같으면 바로 사서 선생님께 보고했다.
"쌤, 저 자식 엄청나게 대충 찍는데요"
그러면 저 멀리서
"아닙니다-"
라고 대답해왔다. 그러면 나는 다시 그놈에게로 돌아가서 감시를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꽤 지나서 모든 작업이 끝났다. 마침 밥도 도착했고 나는 놈의 밥을 뺏어 먹고 있었다. 그때 사서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는 말씀하셨다.
"야, 얘들아, 누락도서가 백몇 권이야.."
그러자 일동 조용해지더니 한 놈이 물었다.
"네? 안 찍힌 게 100권이라고요?"
"그래.. 니네 오늘 밥 먹고 집 가기는 글렀다. 일단 먹어."
슬슬 모두가 밥을 다 먹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차피 나는 도서부가 아니었기에 상관은 없었지만 일단 놈 옆에 있었다. 그리고 사서 선생님께서 누락 목록을 나눠주시자 범인 찾기에 돌입했다. 일단 가장 먼저 보인 건 녀석이 맡은 구역이었다. 나는 바로 옆에서 거들었다.
"아.. 어쩐지 대충 찍더라니. 너는 내가 그렇게 찍을 때부터 알아봤어. 진짜 제대로 안 하더니 결국 일 냈네 일냈어."
그러자 그놈이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아 덧없다, 덧없어. 이번 생에 살아 무엇하리."
말이 끝나고 녀석이 폭소하자 나도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놈이 이어서 말했다.
“얘들아, 범인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일단 이 문제를 해결해야지”
2차 폭소가 시작됐다. 물론 우리 둘만 웃었다. 얼마 안 있어 갑자기 누락 도서가 우수수 나오기 시작했다. 신간 진열대였다. 그곳은 녀석이 맡은 곳이 아니었고 녀석은 바로 먹이 사냥에 돌입했다.
"와.. 너였어?? 아니 범인이 여기 있었네. 여기 있었어. 아 진짜."
그러자 옆에 계시던 사서 선생님께서 피식하고 웃으셨고 우리 둘도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누락 도서가 나올 때마다 놈의 공격은 계속되었고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사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각자는 내일 나오세요”
그러자 녀석이 반문했다.
“아 왜요? 아 진짜 내일 약속 있는데”
내가 옆에서 거들었다.
“뭐래 야생의 숨결을 느끼러 가는 거겠지(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통칭 야숨)”
그러자 그놈이 웃으며 말했다.
“아, 네 일단 나와볼게요”
그렇게 그놈은 다음날까지 나와 일을 끝내고 갔다.
아직 10권을 다 못 채웠기에 계속 녀석과 만나고 있다. 녀석과 만날 때마다 웃고 떠들지만, 여기에 쓸려고 해보니 다 실속 없는 웃기기만 한 얘기여서 기억이 안 난다. 나와 놈은 이런 우리의 대화를 '공갈빵 위 캐비어' 라고 칭했다. 물론 합의된 건 아니고 임의지만 내가 캐비어고 녀석은 공갈빵이다. 그래도 내가 옆에 있으니 그놈이 멀쩡해 보이는 건 기정사실 아닌가? 그래도 (예의상) 나와 매번 이야기를 해주는 공갈빵에게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