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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pr 10. 2024

우리 추리 동아리 클라스 보고 가실게요.

사진 출처: 우리 동아리 기획단 K양

2년째 함께하는 나의 추리 동아리 기획단 아이들이 이번에 한 건 했다. 3시간 연속 이어지는 첫 동아리 활동 시간에 직접 추리 문제를 만들어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

이른바 ‘마피아 방탈출!’


동아리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그저 그 말만 했을 뿐이었다.


- 얘들아. 이번엔 사제동행 동아리 예산이 아예 0원이라서 너희들 사비를 내야 해 ㅠ.ㅠ

- 그런데 선생님은 2021년에 다른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할 때 학교 전체를 무대로 퀴즈 쪽지를 만들어 붙여 놓고 애들 보고 시간 내에 찾아서 문장 완성하고 상품 주는 그런 활동했었어!


그때, 순간! 반짝하는 친구들 있더니 아예 기획단을 자처하고서는 멋진 프로그램 하나를 만든 것이었다. 아이디어 기획부터 세부 상황 설정, 그리고 소품 제작 등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했는지. 이제 중3쯤 되니까 스스로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추진하는 모습에 감동, 또 감동이었다.


녀석들이 만든 스토리의 제목은 바로 “수학익힘책!” 수학책 속에서 매일 같이 달력을 찢고, 물에 소금을 타서 농도를 구하고, 속도를 구하는 것이 못마땅한 한 아이의 아이디어였다. 철수, 연수, 준기, 지혜라는 메인 인물을 만든 후 그들에게 개별 미션을 부여하고 나머지 5명은 시민이 되어 철수, 연수, 준기, 지혜가 누구인지 찾아내는 이 게임은 한 편의 ‘크라임신’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해서 기획단 4명을 포함한 나는 매일 점심시간, 종례 이후 시간, 그리고 늦은 밤 카톡에서 만나며 회의를 거듭했다. 더 정교하고 치밀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빈틈을 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회의를 거듭했는지! 솔직히 나는 그저 돕는 사람이었고 기획단 4명이 주축이 되어 많은 것들을 토의했다. 그 과정에서 분명 엄청난 성장을 거듭했겠지!


프로그램은 어떻게 됐느냐!


당연 대 성공. 무엇보다 내 친구들이 직접 꼼꼼히 준비한 것에 감동했고, 매일 같이 한 교실에서만 수업을 듣는 것에서 벗어나 교실+ 교장실+ 도서관+복지실, 그리고 본관, 신관 등의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며 미션을 해결해야 하는 그 자체로 스릴을 느꼈으며, 내 옆에 있는 친구가 메인 빌런일 수 있다는 것, 내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아이들을 속여야 한다는 것에 큰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실제로 대부분의 후기들이 기획단에게 고맙다는 말과, 자신도 이렇게 프로그램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대부분!)


어찌 됐든 3시간이란 엄청나게 긴 동아리 활동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질 만큼 재미있게 순식간에 흘러갔다.

다음 동아리 활동은 추리 예능을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기로 약속하고 동아리 활동을 끝냈다.




난, 이런 일을 하는 게 참 좋다.

아이들과 수업하는 것도 뭐... 좋지만

재밌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하고-그리고 세세한 스토리들을 꼼꼼히 챙기면서,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실제로 플레이할 플레이어들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

그 과정에서 함께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 동료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계획을 세워나가는 것.


그런 걸 너무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어쩌면 편하게 갈 수 있는 동아리도 굳이 추리 동아리라는 걸 만들었고 작년과 똑같이 운영해도 누구도 아무 말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뭔가 새로운 걸 늘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체력이 약한 나는 늘 힘들고 지치지만- 그래도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 이런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다면 더 좋을 정도로.


그래서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었던 것도 이런 일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는데.

그게 안 되었으니 대신 내가 만난 아이들과 함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나씩 해내보는 중이다.


길을 걷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참신하고 재밌는 아이디어가 마구마구 떠오른다.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방법을 찾아서 실행하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아무래도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선생님들에게는 내 이런 행동들이 무척 신기하게 보이는지

종종 내게 묻는다. 힘들지 않으냐고,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느냐고.


그런데 그냥 떠오른다. 조금 더 재밌고, 즐거운 것.

그래서 단 10분이라도 아이들이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들.


사실 나는,

늘 퇴직을 꿈꾼다.

하루빨리 경제적 자유를 얻고

지금보다 더 탄탄한 경제력을 갖추고

학교를 떠나는 것이 나의 목표다.

퇴직을 하고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퇴직을 해도 절대 돌아오고 싶지 않은 나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적어도 그 순간이 올 때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지금처럼 꾸준히, 즐겁게 해 볼 작정이다.


내 곁에 있을 아이들과 함께. :-)



2주 넘게 고생한 기획단 2K2C 고마워! 너희들의 꼼꼼함, 기획력, 그리고 친절함은 엄청 큰 도움이 됐어. :-)


매거진의 이전글 힘이 들 때마다 글을 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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