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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Nov 03. 2024

책과 두 아이 (1)

#. 1 감히 내가 너의 책을


지유는 도서부 회장이었다.


 새로 옮긴 학교 2년 차 시절, 도서부에 비담임을 하게 된 나는, 지유에게 무척이나 의지했다. 야무지고 책임감 강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지유는 내게 큰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특히 중2 때 가르치며 가까워진 것이 한 몫했다. 뭐든지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이 예쁜 데다가 국어 시간에 돋보였다. 특유의 감수성으로 써 내려간 시는 큰 울림을 주었다. 그런 지유와 함께 할 도서관 생활이라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대로 지유는 도서부 회장 역할을 누구보다 잘 수행해 주었다. 임신 중이었던 나를 배려해 점심시간에 도서부원끼리 알아서 순번을 돌아 도서관을 관리했다. 장서점검, 서가정리, 그리고 대출 및 반납 등. 내가 따로 손댈 것이 없었다. 그저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지유! 당시 호르몬의 변화로 급격히 우울해지거나 급격히 활력을 느끼던 임신 중의 나는 그런 지유에게 무척이나 의지했다. 고마워, 지유야. 덕분에 도서관이 잘 굴러가고 있어.


언뜻언뜻 비치는 어두운 그림자는 시험 때문에 드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끔가끔 짙은 화장을 하고 등교한 날이면, 요새 스트레스받아서 그러나, 싶어 못 본 척한 적도 있었다. 학생이라고 화장을 못할 이유 없고, 잡지도 않았지만, 지유는 왠지 사소한 잔소리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다음 날이면 예전처럼 깨끗해진 얼굴로 등교해 열심히 필기를 하곤 했으니 말이다.


시 창작 수행평가를 하던 날이었던가. 밤새 준비했다면서 너무 떨리다고 말하며 긴장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워낙 성실한 아이여서 남들의 배는 준비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유적 표현, 심상 따위를 꼭 넣어야 점수를 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결론부터 말하면 생각보다 점수를 못 받아 아쉬워했다. 평소 같았으면 “선생님. 진짜 열심히 준비했는데 아쉬워요.”라며 담백하게 끝냈을 지유는, 그 수행평가 점수를 알게 된 날, 따로 날 찾아와 한 번 더 물어봤다.


“쌤. 제가 왜 이 점수예요?”

“어? 아. 그건...”


하며 조목조목 이유에 대해 설명하니 납득을 한다고 말하면서도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 없는 듯했다. 점수가 아쉬워서 그러냐고 했더니


“쌤... 제가요... 진짜.. 진짜..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근데 진짜 밤새서 열심히 준비했는데.... 정말인데.... “


하며 한참을 울다가 갔다. 운다고 점수를 올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참 안타깝다 생각했던, 그런 날이 있었다.


도서관 축제 역시 중심은 지유였다. 체험 부스의 테마를 잡고 열심히 준비했다. 나는 마침 출산휴가를 앞두고 있어 제대로 도와주지 못해 미안했는데 그 마저도 지유는 괜찮다고 했다. 걱정 마세요, 쌤. 저희가 알아서 잘해볼게요.


출산휴가를 들어가던 날. 교무실로 찾아와 책 한 권을 조용히 내밀던 지유.

자신이 직접 엮은 책이라며, 꼭 선생님께 드리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제자가 직접 쓴 책을 선물 받는 것은 처음이라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짐을 정리하며 다른 것은 다 버려도 지유의 그 책(엄밀히 말하면 녀석의 시집)은 잃어버릴까 두려워 미리미리 챙겨 집으로 가져갔었다. 남편에게 부러 자랑도 했다. 딸이 태어나고도 한참 배앓이를 해 잠을 자지 못할 때도 틈틈이 꺼내 읽곤 했다.


섬세하고

진중하고

성실하며

가끔은 반항적인

그러나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했던 지유의 생각이

날 것 그대로 담겨있는 시집을 읽으며 지유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봄이 되어 전해 들은 소식으로 지유는 특목고 진학에 성공했다. 웬만한 아이들보다 멘털이 강한 편이니 잘 버틸 거라 생각하며 안도했다. 지유, 너라면. 그래 너라면.



그리고 몇 년 후.

그러니까

내가 복직해서 정신없이 학교 생활을 하고 있던 중,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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