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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보자 May 13. 2020

새엄마에 대한 편견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놀림을 받았더래요. 샤바샤바 하이샤바 얼마나 울었을까…”


어렸을 때 친구들과 손장난과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많이 불렀던 노래다. ‘샤바샤바’로  시작하는 후렴구가 신나서 즐거워하며 놀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때 난 초등학생이라 가사를 일일이 떠올리며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중간에 등장하는 ‘계모’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어린아이를 핍박하고, 학대하는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이혼 후, 이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다. 어릴 적에 놀면서 불렀던 것과 달리 ‘계모’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거슬렸다. 아이를 학대할 수 있는 존재가 계부나 계모에 한정된 것은 아님에도 왜 굳이 계모를 언급했을까.


물론 ‘신데렐라’의 중요한 플롯 중 하나는 계모와 언니들로부터의 구박이다. 그리고 계모와 자녀의 관계는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소재이긴 하다.


전래 동화에 나오는 콩쥐팥쥐, 장화홍련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디즈니의 만화 신데렐라와 백설공주에서도 계모와 자녀의 관계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된 갈등의 구조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동요는 무의식적으로 새혼 가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살았던 아파트에는 새혼 가정이 있었다. 엄마랑 그 아주머니는 친해서 난 그 집의 사정을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아저씨의 아들과 딸, 아주머니의 아들 총 5명이 한 가족이었다. 엄마 말로는 아주머니가 아이들한테 정말 잘한다고 그랬다.


그러나 10대의 나에겐 그렇게 보이질 않았다. 자녀 셋 중 그분의 친자가 유독 학업 성취도가 뛰어났고, 그 아이만 학원을 많이 다녔기 때문이다.


아저씨의 아들과 딸은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난 그냥 이 둘이 마음에 쓰였고, 새엄마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나로 하여금 새혼에 대한 벽을 쌓게끔 만들었다.


물론 새혼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을 이미 한 번 해봤으니 두 번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몇 배 이상의 노력과 비용이 수반되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큰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에 관한 것이었다.


만약 내가 나의 유전자가 섞인 아이와 상대의 유전자가 섞인 아이가 싸워서 야단을 쳐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과연 공정할 수 있을까.


민약 나를 더 닮은 아이의 얼굴이 심하게 망가져 있고, 다른 아이는 멀쩡하다면 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공정하게 꾸짖었어도 아이들은 나의 말을 오해하지 않고 받아들일까
이러한 상황을 본 사람들은 오해하지 않을까


내가 만든 새혼 가정에 대한 편견은 의외로 견고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정상가족이라고 아이를 학대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새혼 가정이라고 유독 학대하는 것은 아니다.



아동학대 가해자로 언론이 자꾸 계모를 부각시키자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과 정부가 나서 학대 행위자 중 대다수는 친부모임을 강조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집계에 따르면 2016년 아동학대 행위자 중 76.3%(1만 4,158명)가 친부모로 학대 행위자 세 명 중 두 명 꼴이었다. 이 비율은 해마다 비슷하다.


신고된 아동학대 행위자 중에서는 늘 친부모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사실 이 수치는 각 모집단의 크기와 그중 학대행위자의 비율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친부모가 더 많이 아이를 학대한다고 말하기에는 빈약한 근거다.


재혼가정이 전체 혼인 가정의 대략 20% 선을 차지한다는 추정치를 감안하면 친부모나 계부모나 아이들을 학대하는 빈도에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정확하게 알려면 전체 친부모 중 몇 %가 아이를 학대하고 계부모 중 몇 %가 아이를 학대하는지 누적된 수치를 비교해봐야 한다.


-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중에서 -


나만 계부모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언론은 관계에 집중해서 보도를 한다. '평택 계모사건', '울산 계모사건' 등처럼 계모라는 가해자의 신분을 부각시킨다.


학대의 한 축이었던 친부에 대한 언급은 많이 하지 않는다. 사건의 본질보다 관계에 초점을 맞춘 헤드라인 때문에 사람들의 선입견은 더욱 굳어져 가는 것 같다.


이러한 편파적 보도 방식은 새혼 가정의 부모는 원래 아이들을 학대하는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을 굳게 만든다.



새로운 가정에서 새로운 부모와 자녀가 더욱 친밀하게 지내고, 애정을 쌓아가는 경우도 많다.


여전히 그 가족과 나의 부모님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주머니와 딸은 종종 여행을 가곤 한단다.


나의 얼릴 적 만들어졌던 선입견은 잘못된 것이었나 보다. 만약 아주머니가 다른 자녀들을 학대했더라면 지금 딸과 여행을 즐길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일지라도 알게 모르게 부정적 선입견을 생성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문화들이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그것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오해가 쌓이지 않도록 이해를 돕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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