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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보자 Dec 29. 2022

이상한 낌새는 있었다. 단지 내가 무시했을 뿐

내가 쓰는 막장드라마 1

그 사람을 처음 만나고, 좋은 감정을 나누고, 결혼하는 과정을 한 편의 드라마 같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근무 중인 나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먼저 마음을 고백하고, 나도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그 사람에게 빠져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 시간이 기껏해야 4개월 정도였으니 말이다. 인물도 괜찮았고, 나라의 녹을 먹는 직업이라서 남은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막 밀어붙인 것도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게 가능해?”, “너네 정말 천생연분인가 보다” 라는 말로 우리의 과정에 대해 놀라움과 부러움 섞인 감탄을 표현했고, 그런 반응들은 내 결정에 대한 확신을 더욱더 굳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때는 몰랐다. 견고해지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자기 최면이었다는 것을.


지금 생각해보면 결혼하기 전부터 그 사람의 이해 못 할 행동은 내 기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입사 1년도 안 된 신규직원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은 20대라 첫 월급부터 이것저것 막 지르고 싶었지만 보통의 경제관념과 이성은 있었기에 할부나 리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당연히 차도 없었고 가끔 쓸 일이 생기면 부모님 차를 빌렸다. 


그 사람은 차가 있었다. 일하는 곳이 교통이 불편한 외곽이어서 대중교통으로는 쉽사리 출퇴근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항상 차를 타고 다녔다. 가끔은 퇴근하는 나를 데리러 직장 근처로 오기도 했고, 주말엔 종종 드라이브를 하곤 했다. 결혼 후에도 일을 계속할 거라고 말했던 그 사람에게는 차가 필수품이었다.

상견례가 끝나고 신혼집을 알아보기 위해 발품을 팔다 지친 퇴근 후 저녁이었다. 


“차를 하나 사야 할 것 같아.”


예상치 못한 말이 귀에 들렸다. 너는 지금껏 타고 다닌 차가 있는데 왜 갑자기 차를 사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단계 진화한 예상치 못한 답변이 들였다. 사실 차는 본인 차가 아니고 아빠 차다. 그럼 왜 네 차인 척했냐고 묻자 결혼하면 자기가 갖고 올라고 했는데 이번에 취준생이었던 오빠가 취업을 해서 오빠가 써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지금 전세보증금이랑 세간살이 마련하는 것도 빠듯한데 차까지 어떻게 사냐고 대꾸하자 자기도 이럴 줄 몰랐고, 출퇴근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냐며 서운함을 표했다. 큰 일을 앞두고 자동차 하나로 균열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결국 중고차를 사기로 결정했다. 그때가 그 사람한테 처음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뻔했던 순간이지만, 빠른 수습으로 싸움을 모면했다. 양보가 미덕이라 생각했고, 남자는 좀 품을 줄 도 알아야 남자 지라는 웃지 못할 마음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그날의 진실은 그 차는 그저 그 사람 아빠 차였다. 처음부터 아빠차였고, 끝까지 아빠차였다. 애초에 오빠한테 그 차가 갈 계획이 없었다. 그 오빠는 일을 시작한 몇 달 후 자신의 차를 뽑았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몇몇 처음 맞이하는 순간과 그로 인한 당황스러움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고 무사히 식을 마쳤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설 연휴의 어느 날, 그 사람은 나에게 예상밖의 통보를 했다. 살면서 그런 순간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너무나도 신선했던 그런 말을 말이다.


“임신을 한 것 같아. 유산할지도 모르니 휴직을 해야겠어.”


임신 중요하다. 나도 엄마의 임신으로 태어났고,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었어서 그 순간이 빨리 찾아오길 바랐다. 그런데 임신을 했다는 그 사람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임신하면 몸 관리가 중요하지. 그런데 지금 휴직하는 것은 너무 이르지 않아? 내 주변만 봐도 출산 전까지 일하거나 아무리 빨라도 5, 6개월은 지나서 출산 휴가를 들어가는데.”


“넌 내가 일해서 돈 버는 게 중요해? 뱃속의 아이가 중요하지 않아?”


나는 단지 납득이 안 가는 상황에 대해서 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은 배우자와 뱃속의 태아를 배려하지 않고 그저 월급을 바라는 남편 취급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말을 더 이어갈 수 있으며, 휴직을 반대할 수 있을까. 


배려심 없고 돈 만 밝히는 남자가 되지 않고 사랑스러운 남편과 아이의 아빠라는 타이틀을  갖기 위해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뒀고, 더 이상 묻고 따지지 않았다. 그런 체면치례는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서 나에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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