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란>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화제를 모았다.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영화 축제에 OTT 상업영화를 간판에 내건 파격 행보였다. 박찬욱 감독의 제작사 모호필름에서 만들었고 박찬욱 감독이 각본에 참여했다고는 하나. 각종 논란을 불러 모았고 영화제 내내 진통을 겪은 뜨거운 감자였다.
개막작으로 선정한 이유를 두고 박도신 부집행위원장은 한마디로 “재미있었다”며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는데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유독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플러스 등 OTT 영화, 시리즈 광고가 영화제 주변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도 과열되었다. OTT 플랫폼에 프리 패스를 준 게 아니냐는 우려도 따랐다. 해외 영화제에서도 OTT 오리지널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전례가 있었으나 비상업영화였다. 내년 30주년의 해가 되는 때에는 어떤 얼굴로 맞이할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개막작이 드디어 공개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재미있게 봤다. 영화제 아니면 볼 수 없는 대형 스크린의 프리미엄이 작용한 걸까. 무협 장르의 흔하디흔한 우정과 오해, 복수, 화해의 과정, 혹은 영웅서사를 굳이 조선으로 옮겨와야 했나 살짝 갸우뚱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액션 활극이란 장르에 충실한 볼거리가 눈을 떼기 힘들었다. 도포 자락 휘날리며 산발한 머리를 한 채 말 위에서 칼을 휘두르는 강동원의 스타일은 따라올 사람 없이 멋졌다. 다만 마지막에서 맞붙는 종려-천영-겐신의 삼인 해무 액션의 영상미와 칼의 부딪히는 효과음 등이 각기 다른 관람 형태에서도 빛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임진왜란 7년을 드러낸 전, 후 사정 다뤄
<전, 란>의 쉼표는 전쟁과 난리 혹은 반란, 혁명 사이 다양한 인물의 서사로 채워진다. 함께 자랐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총명함과 무예를 두루 갖춘 몸종 천영(강동원)이 선조(차승원)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이 되어 진검승부를 겨루는 이야기다.
막역지우였으나 완벽한 적이 되어버린 오해의 관계망뿐만 아닌 다양한 서사가 끼어든다. 난세에 개인 안위에만 신경 쓰는 선조,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지만 몸으로 부딪쳐 세상 이치를 깨달은 범동(김신록), 민중을 이끌어가는 깨어 있는 양반 출신 의병장 자령(진선규)과 무예의 뜻을 잃고 살인귀가 되어가는 일본 선봉장 겐신(정성일) 등 각 캐릭터는 개인과 집단의 사회적 시스템을 의미한다.
영화는 전쟁 전후 부조리한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현대에도 변하지 않는 의의를 논한다. 임진왜란 7년을 배경으로 하되, 처음(원인)과 끝(결과)만 있다. 이미 수많은 콘텐츠에서 봐온 임진왜란은 쏙 빼고 나라의 민란과 개인의 혼란을 다룬다.
전쟁에 신분을 뛰어넘어 하나로 뭉쳤지만 바뀌지 않는 시스템 안에서 분열을 거듭한다. 왕이나 백성이나 모두가 귀한 존재라는 조선의 사상가 정여립의 주장에 따른다. 천하의 주인은 따로 없어 양반과 노비가 함께 무술을 닦고 술과 음식을 나눠 먹던 대동계의 사상을 전면에 내세운다. 훗날 ‘두루 온 세상 사람이 다 하나다’라는 뜻을 가자 범동은 정여립의 대동계를 이어간다. 새롭게 창립한 범동계를 주역으로 등장해 민중 화합의 의미를 되새긴다.
이름값, 400년 후에도 중요한 가치
새로울 것 없는 소재 중 유일한 여성 의병 ‘범동’의 활약은 극의 방점을 찍는다. 원래 남성 캐릭터였던 범동은 김신록을 만나 여성으로 바뀌었다. 게릴라 전투를 통해 얻은 날것의 무예를 펼친다. 평범한 백성이 도망간 관군의 자리를 채운 의병이 되기까지 사연을 응축한 캐릭터다. 의병들이 평소 자신들이 쓰던 농기구를 무기로 제작해 사용했다는데 기인했다. 제 키만 한 도리깨를 들고 휘두르는 투박한 액션에서 관록과 지혜, 분노가 엿보인다. 도리깨는 곡식의 낟알을 떠는 데 쓰는 농기구이지만 범동은 출중한 실력으로 일당백 상대를 제압하는 데 쓴다.
범동은 지켜야 할 백성과 나라를 버리고 도망간 왕을 믿지 않는다. 그런 왕을 향해 헌신하는 의병장 자령을 존경하면서도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현장에서 배운 노하우로 자신만의 신념과 지혜를 원동력 삼아 소중하다고 믿는 이치를 지키려는 민중을 대표하면서도 현대적인 인물이라 매력적이다.
이름은 정체성을 상징한다. 어릴 적 함께 자란 종려는 천영의 이름을 두고 ‘따를 천에 그림 자영을 써, 내 그림자가 돼라’며 우정으로 포장한 종속을 지시한다. 훗날 의병장 자령을 만나 이름의 뜻을 묻는 장면이 반복돼 묘한 기시감을 발산한다. 자령은 ‘내가 아비였다면 하늘 천에 빛날 영을 쓸 거다’라며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평등을 의미로 해석한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이름 뜻이 변했던 천영은 범동계의 이름을 직접 짓는다.
천영은 원래 양인이었으나 태중 엄마의 신분이 하락으로 갑자기 노비가 되었다. 천영은 고작 양반도 아닌 양인의 신분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한사코 노비의 삶을 거부하려 들지만 완고한 세상은 품어주지 않는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작은 바람도 조선의 시스템은 허락하려 들지 않는다.
<전, 란>의 전복되지 못한 계급과 이름의 정체성은 현대에도 여전히 동등하게 작용하는 요소다. 왜란 7년 동안 왕은 누구든 나라를 위해 싸우면 면천 시켜 준다는 조건을 내건다. 민중은 모든 것을 걸고 싸웠지만 신분 상승이 아닌 반역자가 되어 핍박당한다. 이름의 뜻이 바뀐 천영, 비빔밥처럼 세상을 아우르는 계의 상징이 된 범동의 이름값은 오늘날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전하는데 쓰인다.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은 존재한다.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2024년 사람들은 수저론을 요리에 접목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를 보며 열광한다. 백수저, 흑수저로 나눠 대결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만연한 시대 철저히 ‘맛’으로만 승부하며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유발한다. 이 프로그램에서도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백수저는 이름으로 불리고, 흑수저는 닉네임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마지막 대결에서야 나폴리 맛피아는 당당히 권성준이란 이름과 생명을 걸고 시그니처 요리를 선보이게 된다. 재미교포인 에드워드 리는 미국 이름 대신 이균이란 한국 이름을 걸고 요리한다. 이름은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와 연결되는 궤적을 뜻한다. 천영, 범동의 이름값은 시대의 한계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도 철저히 나아가는데 주력한다. 이를 통한 독립적 개체의 설립은 현시대에도 낯설지 않는 삶의 목적이며, 나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끊임없이 되묻는데 일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