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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Nov 12. 2024

<연소일기> 수능끝! 혼자, 선생, 부모도 관람 필


엄격한 가풍에서 자란 두 형제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평범한 형 요우제(황재락)는 공부도 재능도 최고만을 중시하는 아버지의 눈 밖에 난 지 오래다.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특출난 모범생이자 가족의 자랑 동생 요우쥔(하백염)과 늘 비교 대상이 되었다. 보호받아야 할 가정에서 언제나 겉돌던 요우제는 학교에서도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전락하게 된다. 부모와 선생님, 친구들의 관심과 사랑에 멀어져 버린 지 오래, 오늘도 혼자 슬픔을 삼킨다.     


매번 모두를 실망시키는 스스로가 한심하다. 열심히 해도 잘 안되는 건 누구 탓인지 모르겠다. 하나뿐인 만화책도 빼앗기고 유일하게 마음을 나눈 피아노 선생님마저 그만두자 완전히 고립되어 버린다. 그러다 우연히 홍콩대를 다니는 교장 선생님의 아들이 매일 일기를 쓴다는 것을 듣고 무거운 마음을 일기장에 털어놓는다. 꾸준히 쓰다 보면 홍콩대도 가고 그러면 부모님도 좋아하리라고 생각한다. 잘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과 세상에서 소외된 감정을 솔직히 적어 내려간다. 마음 편히 터놓을 수 있는 창구는 이제 일기장 뿐이다.     


한편, 방과 후 교실 쓰레기통에서 유서를 발견한 정 선생(노진업)은 ‘나는 쓸모없다’는 문장을 읽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마주한다. 일일이 필적을 조사하며 유서의 주인을 찾아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헤맨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쌓게 된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그날을 떠올린다. 제대로 치유되지 못하고 덮어버린 상처는 여전히 고통스럽게 정 선생을 쫓아다닌다. 애써 잊었던 과거와의 조우가 여전히 두렵기만 하다.     


가정폭력아이의 고립감 표현     

<연소일기>는 가정폭력으로 물든 정신적 신체적 트라우마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히는 탐구보고서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 편집해 그날의 진실에 천천히 다가간다. 진실을 알게 된 후 몰려드는 후폭풍은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분노, 공감, 연민이 한꺼번에 몰려오게 된다.     


폭력의 피의자, 피해자, 방관자가 모두 한 가족인 가정폭력의 두 얼굴을 묘사한다. 형 요우제는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시종일관 발버둥 친다. 의지하고 사랑해야 할 형제를 첫 번째 경쟁상대로 내세우는 잔혹한 교육열이 문제다. 동생보다 못한 형이라며 점차 가족의 수치로 여긴다.      


내 자녀를 최고로 키우려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폭압은 아내의 삶을 망가트리고 자녀의 성장에 영향을 끼치고야 만다. 방관자의 모습에 초점 맞춘 설정이 눈에 띈다. 동생 요우쥔과 어머니는 폭력을 끊어내지 못하고 방관자의 삶을 택한다. 어머니는 이혼으로 죄책감에서 벗어나려 했고 동생은 모든 상황을 되돌리기엔 어린 나이였다. 형이 아니라면 자신에게 돌아올 폭력이 무서워 애써 외면하려 했던 모습으로 그려진다.      

열 살 소년에게 가혹한 현실과 힘든 목표를 설정한다. 스펙과 트로피, 좋은 학교로 대변되는 것들이 삶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는 논리다.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잃어버린 채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아이가 안쓰럽다. 홀로 타버리는 초처럼 차츰 연소되어 가고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부모의 억압과 강요, 폭력 속에서 요우제는 쓸모와 가치를 증명해야만 한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은 없고 오직 혼자 이겨내야 한다고 떠민다. 아버지는 자녀를 사랑으로 품어주지 못하고 옭아매기만 한다. 유일하게 피아노 선생님을 의지했지만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도 없이 해고해 버린다. ‘힘내! 언젠가는 네가 바라던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을 거야!’라는 문구가 적인 만화책을 수십 번씩 읽으며 버텨냈지만 그마저도 빼앗긴다. 힘들 때마다 좋아하는 애착 인형으로 위로받았지만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열 살 소년에게 가정은 도망갈 수 없는 감옥이 되어간다.      


지난친 한국의 교육열이 떠올라..     

어린이도 다양한 감정을 지닌 한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하지만 가정 내 어린이의 인권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아이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거절이나 싫다는 의사 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많다. 관심과 칭찬만이 사랑의 징표라 믿는 순수한 마음에 깊은 커다란 멍 자국을 남긴다.     


그래서일까. 묘하게 한국의 교육 현실과 연결된다. 지나치게 과한 교육열, 사랑을 가장한 폭력, 엘리트만 강요하는 사회, 타이거 부모가 떠올랐다.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양육방식, 소통의 부재는 가족의 해체로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가정폭력, 학교폭력이 만든 고립감과 우울감에 지친 청소년들의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닮아있다.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하루 전에 개봉한다. 인생의 첫 번째 허들을 넘어선 청소년, 함께 고생한 부모에게 권하고 싶다. 요우제와 요우쥔 형제의 숨겨진 이야기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실패를 받아들일 줄 아는 건강한 사회, 격려해 줄 수 있는 어른이 만들어나갈 세상은 어제 보다 나을 거라는 작은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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