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평소 “나라면 24시간 내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호언장담이 공약에도 반영된 만큼. 미국 대선 결과가 전 세계에 미칠 영향은 크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당선 소식에 축하 인사를 전하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과연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종식하는 데 일조할까? 그전에 이 영화를 보길 권한다.
목숨 걸고 반출한 영상의 진실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점차 포위되는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을 담았다. 2022년 2월 24일부터 3월 15일까지 생생한 현장이 기록되어 있다. 21세기 제노사이드였다. Z 표식을 한 러시아 탱크가 다가와 포위한다. 민간인 지역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벌인 무차별적인 폭격은 도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한순간에 삶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슬픔, 분노, 좌절은 도시를 거대한 지옥으로 만들어 놓았다.
안전을 위해 다른 외신기자들은 위험 지역에서 철수하기 바빴지만, AP 취재팀은 최전선에 끝까지 남았다. 뉴스의 가치와 언론인의 의무, 즉 저널리즘 정신을 잃지 않고 고군분투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편집자에게 급히 전달한 영상이 보도된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참혹한 영상을 러시아 쪽에서는 가짜 뉴스라고 반박한다. 언제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죽음의 문턱 가까이에서 명운을 목격하자 두려움도 희석되어간다. 자고 일어나면 파괴된 면적과 민간인 희생자 수가 늘어나기만 했다.
상황은 점차 험악해지기만 했다. 얼마 되지 않아 전기, 인터넷이 끊어져 영상 보낼 길이 막막해져 발만 동동 굴렀다. 목숨 걸고 100km 이상을 달려 기록물을 들고 통과한 검문소만 15개. 삼엄한 경비를 뚫고 자동차 좌석 아래, 탐폰에 숨긴 채 영상 반출에 성공했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에 진실을 전한 영상은 영화로 제작되어 전 세계에 소개되었다.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과 2023 퓰리처상 공공보도상을 받았다.
오늘 당신의 관심 뉴스는?
당신이 읽고 있는 뉴스는 진실일까. 매일 정보의 홍수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뉴스란 자본과 권력의 관계로 정의된 지 오래다. 스마트폰으로 손가락 몇 번만 두드리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요즘 뉴스는 AI가 작성하기도 하며, 기사 같은 광고도 수없이 많다. 뉴스의 가치와 지속 시간도 길지 않다. 곧바로 다른 기사에 묻히고 결국 사장된다. 그 안에서 가치 있는 뉴스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AI가 분석해 큐레이션한 뉴스가 첫 화면에 뜬다. 우리는 그 뉴스를 클릭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아젠다 키핑(agenda keeping)이 중요하다. 아젠다 키핑은 공론화되어야 할 의제를 설정하고 취재하는 아젠다 세팅을 지속적으로 하는 행위를 말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200일 동안 쉬지 않고 보도했던 손석희는 《장면들》을 통해 “디지털 시대에 꼭 필요한 뉴스를 전하는 행동은 필요하다”며 꾸준한 관심의 중요성을 전했다.
이 때문에 마리우폴의 끈질긴 취재는 소중한 뉴스 이상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고 한눈에 알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도 정보 은폐와 날조의 가능성을 낱낱이 보여준다. 생사의 갈림길을 위태롭게 걸어가던 취재팀은 병원에 머물며 다양한 피해자들을 마주한다. 취재팀은 전쟁 초반 폭격에 정신없이 울던 여인을 며칠 후 병원에서 만난다. 집에 돌아가 있으면 가족이 돌아올 것이라고 했던 말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결국 집은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고 대피소에서 재회하게 된 불운으로 돌아왔다. 가히 어떠한 말도 함부로 내뱉지도, 미래를 장담할 수도 없던 20일이었다.
하반신이 피투성이인 채 실려 왔던 임산부는 뱃속에서 숨진 아기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말은 “차라리 죽여 달라”였다. 축구하다 한쪽 다리를 잃은 아들을 데려온 아버지는 싸늘해진 아들을 두고 차마 발길을 돌릴 수가 없어 서성인다. 18개월 된 아이가 숨 쉬지 않아 달려온 젊은 부부는 천사 같은 아이를 품에 안고 오열한다. 아이가 왜 죽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통신이 끊겨 정보가 부족한 시민들은 긴긴 시간 공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알 수 없는 내일을 맞는 사람들에게 가느다란 희망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병원은 순식간에 시체로 뒤엉켜있다. 보관 장소가 없어 다용도실까지 즐비했고, 결국 깊은 구덩이에 시체가 쌓여간다. 인도주의적인 전쟁과는 거리가 먼 러시아의 무차별 공격으로 마리우폴은 쑥대밭이 되었다. 먹고 자는 것도 잊어버린 의사는 “전쟁은 엑스레이와 같아서 인간의 내부가 전부 드러난다. 선한 사람은 더 선해지고 악한 사람은 더 악해진다”고 말한다. 전쟁은 인간의 삶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는다.
내레이션을 맡은 기자 겸 감독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의 담담한 어조는 영화를 더욱 숙연하게 만든다. 생각지도 못한 아픔을 앞에서 계속 촬영해야 할지, 위로해야 할지 갈등한다. 때때로 전쟁 중에 태어난 딸아이를 떠올리며 가족을 생각한다. 안도감과 불안함의 이중적인 마음이 차올라 괴롭기만 하다.
영화를 본 후 느낀 관객의 심정도 비슷할 것이다. 이는 영화의 존재 이유이며 20일 전쟁을 지켜본 취재진의 마음과도 같다. 분노를 터트리다 못해 이내 먹먹해진 마음은 무겁고 아프다. 처참한 광경을 함께 본 고통은 찰나겠지만 이들의 아픔은 영원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린 소녀가 울먹이며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한 얼굴이 오랜 잔상을 남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