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령 Nov 18. 2024

<딜리버리> 임신을 거래하던 MZ 커플의 사연


영화 <딜리버리>는 유산상속의 이유로 임신이 필요한 금수저 부부 ‘귀남(김영민)’, ‘우희(권소현)’ 부부와 가진 것 없던 백수였지만 어쩌다 보니 아이를 가지게 된 ‘미자(권소현)’, ‘달수(강태우)’ 커플의 공동 태교 코미디다. 대리 임신과 출산, 영유아 거래라는 무거운 소재를 통통 튀는 네 사람이 시너지로 만들어 간다.      


계획 없는 임신을 거래하다     

앞길이 구만리지만 당장 오늘 사는 데 집중해야 하는 공시생 미자와 동거 중인 게임밖에 모르는 백수 남자 친구 달수는 최근 직장까지 그만두고 꿈도 미래도 포기해 버린 청년이다. 현실감각에 무뎌진 청춘 커플에게 덜컥 원치 않는 임신까지 산 넘어 산이다. 준비 없는 임신은 일정한 직장이 없는 커플에게 재앙과도 같았다. 둘만의 사랑만 있다고 올바르게 기를 수 없는 일이었다. 낳고 나면 문제는 더 커진다. 태어나면서부터 육아에 쏟아붓는 돈만 해도 엄청났다. 이리저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답이 나오지 않자 두 사람은 뒤돌아볼 것 없이 중절 수술을 결정했다.      


수술하고 돌아온 날 밤, 미자는 갑작스러운 하혈에 병원에 실려갔다. 검사해 보니 웬걸. 뱃속에 아직 아이가 살아 있는 게 아닌가.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두 번씩 맞을 수 있는 건가 당황스러움도 잠시. 담당 의사는 뜻밖의 제안을 듣는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귀남과 우희 부부는 그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의사였다.     

어렵게 고민하지 말고 쉽게 생각하란다. 자궁(아기방)을 임대한 건물주라 생각하라는 우희의 설득이 묘하게 끌린다. 임신 기간 동안 숲세권 집도 마련해 주고, 정기 검진 때마다 500만 원씩, 낳아주면 5천만 원을 지원하겠다는 솔깃한 제안이 싫지만은 않았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어떻게 하겠나. 중절 수술 실패로 살아남은 아이는 졸지에 팔자를 고쳐줄 복덩이로 둔갑했다.     


그날 이후 커플은 원하는 돈을 받고 금수저 커플은 원하는 아이를 받기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겉으로 보면 일거양득,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제로섬 게임이었다. 윈윈하는 기업의 협력 체제처럼 네 사람은 공동 태교에 혼신의 힘을 더한다. 금수저 부부는 계약 이후 가짜 임신을 연기해야 했다.      


데릴사위로 들어와 병원장이 된 귀남은 본인의 책임은 숨긴 채 아내를 속이면서까지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어려움 없이 자라온 우희 또한 인생 최대의 난제에 봉착하며 임산부 코스프레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원하는 바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우희는 아이의 기형 여부를 듣고 새로운 제안을 건넨다.     


무거운 소재를 가볍게 다루려는 고민     

‘처음처럼’이라는 말이 주는 책임감을 생각해 본 적 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처음과 같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시간이 흐르면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책임지려는 태도는 최소한의 양심인 셈이다. 과연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랑일까, 물질적 풍요일까. 부모라면 갈림길에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인지 윤리적, 도덕적 고민이 커질 것이다.      


영화는 가변적인 마음을 생명의 소중함과 사랑의 힘을 빌려 접근하려 한다. 돈이 있어도 아이를 얻지 못하는 쪽과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아님에도 덜컥 임신부터 한 쪽의 균형 찾기는 거듭된다. 아이를 중심에 두고 엎치락뒤치락 역전되는 기세를 코믹하게 풀어냈다. 깊게 다루기 보다 풍자를 섞어 유머러스한 연출법을 택한 시도다. 신구 세대와 계층 간의 갈등도 훑으며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완성했다. 미자와 달수의 선택을 그저 비난만 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제목 ‘딜리버리(delivery)’는 영어로 출산과 배달의 두 가지의 의미다. 손가락만 몇 번만 두드리면 금방 집 앞까지 도착하는 배달과 귀한 생명의 탄생이 같은 단어를 쓴다. 열 달 동안 품고 있다가 부잣집에 보내줘야 하는 미자와 다수의 상황과 맞아떨어진다.      


상징과 의미는 딱 거기까지다. 안타깝게도 미자와 달수의 선택으로 앞선 장점이 희석되고야 만다. 귀남과 우희 부부는 그토록 아이를 원했지만 장애 확률을 듣더니 180도 바뀐 태도를 취한다. 생명을 물건처럼 쉽게 거래하는 것은 물론 하자가 있다면 반품하려는 행동을 취해 분노를 산다.      


아이를 넘기겠다는 계약에 동의했던 철없던 미자가 태동을 느끼고 마음이 변하는 시점도 큰 공감을 얻지 못한다. 태명도 짓지 않고 정 주지 않으려 일부러 ‘이거’이라 지칭하던 미자의 모성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이로 인한 갈등은 우당탕탕 진행되고 뜻밖의 결말로 향한다. 가장 이해되지 않는 행동은 조용하던 달수가 저질러 버린다.     

다만, 베테랑 배우가 출연해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의 가장 큰 발견은 임산부 미자 역의 권소현이다. <그 겨울, 나는> 이후 KAFA 작품을 꾸준히 출연해 독립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예다. 경험 없는 임산부를 연기하기 위해 지인을 소개받아 직접 만나고 연구해 캐릭터를 잡아갔다. 개봉작 <딜리버리>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새벽의 Tango>까지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2세대 걸그룹 포미닛 출신으로 화려했던 20대를 지나 30대 배우의 행보를 이어가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 리스트에 넣어 두어도 아깝지 않은 발견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흘> 오컬트와 가족 드라마의 조합실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