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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Dec 13. 2024

<이처럼 사소한 것들> 보고도 못 본척 할 수 없어서

아일랜드의 대표 작가 클레어 키건의 <말 없는 소녀> (소설명: 맡겨진 소녀) 이후 두 번째 영화된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따스한 크리스마스를 예고한다. 소설을 거의 그대로 영상화했으며 출산 한 소녀를 임신 중으로 각색해 두 사람의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     


킬리언 머피가 소설을 읽고 반해 직접 제작과 주인공으로 분해 애정으로 드러냈다. 아일랜드 출신인 그가 아일랜드의 대표 소설가인 클레어 키건의 소설의 영화화는 의미심장한 프로젝트였다. <오펜하이머> 현장에서 만난 맷 데이먼과 이야기를 나누며 벤 애플렉과 운영 중인 제작사 ‘Artists Equity’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부조리함을 목격한 성실한 가장의 행동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언뜻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에 사는 빌 펄롱(킬리언 머피)의 갈등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관행처럼 되어버린 부조리에 항거하는 도덕적 행동이다. 사려 깊은 눈빛으로 주변을 살필 줄 아는 그는 소박하고 성실한 한 가정의 가장이다. 석탄을 팔며 아내와 다섯 딸과 소중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하러 갔다가 어두운 실상을 알고 잔잔했던 마음이 소리 없이 요동친다.     


그날 이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목격한 후 양심의 가책은 커진다. 영혼까지 말라 버린 듯한 아이들이 빨래와 청소를 하고 있었지만 수녀들의 태도는 위압적일 정도로 이상했다. 마치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듯 보였다. 임신 중인 한 소녀가 석탄광에 갇혀 있었다. 추운 겨울날 얇고 짧은 옷을 입고 차갑게 식은 몸으로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놀다가 들어가게 되었다고 하기에는 가혹한 놀이였다.    

 

펄롱은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를 정도였다. 불면의 밤이 지속되며 자기도 모를 마음속에서 연민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내는 수녀원의 소녀들을 모른 척해야 한다고 했다. 사고를 쳤다면 그에 맞는 대우를 받는 거라며 질책했다. 우리 아이들은 다르다며 가족의 안위, 가진 것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단골 펍의 사장도 비슷한 소리를 했다.     


수녀원은 마을의 모든 일에 관여하기 때문에 눈 밖에 난다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했다. 아일랜드 사회의 뼈대를 이루는 교회와 반대 노선을 탄다면 앞으로 가시밭길이 예상된다는 이유였다. 원장 수녀(에밀리 왓슨)는 펄롱을 따로 불러 은근한 협박을 주었다. 앞으로 딸 셋이 수녀원이 운영하는 학교에 다닐 예정이지 않냐며 석탄값과 별도의 아내에게 보내는 돈 봉투를 건넸다.     


요즘따라 더욱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자비로웠던 윌슨 부인이 떠오른다. 미혼모였던 어머니를 거두어 준 윌슨 부인은 친자식처럼 모자를 보살펴 주었다. 그분이 없었다면 보호소에서 마주친 어느 소녀와 아기처럼 세상과 등지고 살아가야 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윌슨 부인의 넓은 아량으로 펄롱은 고급스러운 취향과 문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어려운 시기에도 배곯지 않고 유년 시기를 보냈으며 부족함 없이 자라났다.     


펄롱은 앞으로 펼쳐질 고난보다 지금 당장 실천하지 않으면 평생을 괴로운 늪에 빠져 살 것을 알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옳은 일을 했다는 자부심이 차올랐다. 다섯 딸이 태어나 품에 안길 때보다 벅찬 행복감이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선물보다 사소한 친절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체감했다.     


은폐된 보호소로 사라진 소녀들     

영화는 1922년부터 1996년까지 타락하고 방탕하다고 여겨진 여성들이 갱생하게 된다는 교화소로 불린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참회의 성녀인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딴 세탁소는 18세기부터 운영되었다. 사회에서 낙인찍힌 소녀들이 무급으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일삼는 곳이었다. 직업여성, 미혼모, 미혼모의 딸 등 당시의 성 윤리에 어긋난 여성들이 노동으로 죄를 씻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성범죄 피해자, 품행이 단정치 못한 여성 등 계율을 준수하지 않았거나 어길 여지가 있다면 가차 없이 이곳으로 보내졌다.     


이곳에서 태어난 신생아들의 75%가 돌이 되기 전 사망했으며, 강제 입양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챙겼다. 통제를 따르지 않으며 독방에 감금하거나 강제 체벌을 가하는 등 인권 유린이 만연했다. 국가는 이 시설을 구금 및 보호 시설로 이용했고 진실 알면서도 묵과했다. 이곳에서 아이를 잃은 여성, 목숨을 잃은 여성은 최소 만 명으로 추산된다.     


별이 반짝이는 컴컴한 새벽에 나와 하루 종일 목재와 석탄을 나르고 새카맣게 때가 낀 손으로 퇴근하는 가장의 뒷모습이 애처롭다. 다섯 딸과 아내를 돌보는 가장의 무거운 어깨는 한껏 굽어 있다. 지친 기색으로 귀가해 가장 먼저 들어와서 하는 일은 꼼꼼히 손을 씻는 일이다. 마치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이 티끌 하나까지 보이지 않도록 청결을 유지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매일 고된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일상이 버겁고 허무하기만 했던 펄롱은 처음으로 용기를 낸다. 윌슨 부인이 내어준 작은 손길처럼 누군가에게는 의지가 됨을 느끼게 되었다. 아내 아이린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어릴 적부터 읽고 싶었던 찰스 디킨스의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부탁한다. 찰스 디킨스의 자전적인 성장 소설로 마흔을 앞둔 그의 삶의 지침처럼 생각했던 책이다.     


평온과 안정이 보장된 마음이 불편함 보다 고생스럽더라도 발 뻗고 잘 수 있는 행복에 가치를 둔 펄롱의 행동은 오랜 잔상을 남긴다. 받은 사랑을 나누어 주려는 마음, 사소함이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면 얼마나 큰일인가. 혐오와 차별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작은 빛은 ‘용기’라는 두 글자다. 아프고 슬픈, 그래서 따뜻한 양가적인 감정이 벅차오르는 엔딩은 먹먹함이 크다. 12월과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말 없는 소녀> 바로 보기 

https://blog.naver.com/doona90/22311908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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