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봤다. 이번에도 넷플릭스다.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미뤘던 영화다. 웬일로 기분이 내켜서 봤다. 2000년 대 초반 한국 영화 특유의 어색한 연기와 출연자들의 수수하고 앳된 얼굴들이 좋았다.
특히 배두나의 풋풋한 얼굴이 가장 좋았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경제적으로 딱히 부족함이 없지만 정서적인 교감은 결핍된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과 때론 단호한 태도를 지녔다. 마음이 무척 가까워지는 캐릭터였다. 대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 하나가 생각나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배두나는 담배를 많이 태웠다. 나는 살면서 담배를 딱 한 번 입에 대어만 본 적이 있는 비흡연자일 뿐이지만, 요즘 들어 자꾸만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 중간중간 맛있게 담배를 피우는 그녀 때문에 영화를 다 본 뒤에는 결국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사실 이전부터 내 손으로 담배를 사는 날을 고대하며 담배 리뷰를 해둔 블로그들을 뒤져가며 편의점에 파는 담배 종류를 알아두었으므로 '첫 담배로는 뭐가 좋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던힐 1미리. 시간을 왕창 아꼈다. 편의점을 향해 가는데 왠지 모르게 담배를 사는 김에 초콜렛도 같이 사면 진짜 어른처럼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잘 떼기 없고 개똥 같은 생각이었지만 홀랑 넘어갔다.
편의점 도착하자마자 담배는 안 사고 초콜렛부터 구경했다. 한참 구경하다가 1+1 하는 초콜렛 두 개 집어서 카운터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원래 자주 사가는 조합인 척 "저 이거랑 던힐 1mg도 하나 주세요" 무심하게 말했다. 그러자 편의점 알바생은 옆구리가 통통한 박스 한 갑을 꺼내주었다. 누리끼리한 이빨에 거뭇거뭇한 것이 껴있는 숭한 사진이 박혀있고 "치 아 변 색"이라고 단호한 고딕 볼드체로 적힌 것을.
사진이 너무 숭한 나머지 그것을 사고 싶은 마음이 조금 사라졌다. 다른 사진이 들어간 것은 없나요라고 물어보려다 찌질해 보일 것 같아서 군말 없이 계산을 한 뒤 받아 들었다. 담배를 사서 편의점을 나서자마자 <고양이를 부탁해> 속의 간지나게 담배 태우는 배두나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기왕 사 왔는데 모셔둘 수는 없어서 비닐을 벗기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이 글을 쓴다. 불도 붙이지 않고 물고만 있었을 뿐인데 어쩐지 속이 메슥거리는 느낌이다. 물고 있기만 했는데 “치 아 변 색(단호한 고딕 볼드체)”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