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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12. 2023

당신은 우울증이 아닐지도 모른다

0. 서울대생이 ADHD 진단을 받기까지

* 먼저 이 글은 저의 아주 개인적인 사례와 증상을 이야기하는 글에 불과하여 절대 일반화할 수 없음을 밝혀 둡니다. 제 글만 읽고 스스로를 ADHD라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저와 비슷한 일을 겪고 계신 분이라면, 병원에 가서 진료받으시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입니다.






 - 어릴 때부터 느꼈던 것중에 남들하고 좀 다른 게 있었던 것 같다 하시면 편하게 말씀해주셔도 괜찮아요.

 - 음… 진료 보면서 이미 다 말한 것 같긴 한데요. 그냥 저는 저만큼 생각을 많이 하고 사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걸 어른 되고서 알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말했더니 선생님이 웃으셨다. 이번이 세 번째 진료였는데 웃으시는 모습은 겨우 두 번 봤나 그랬다.


 - 사실 그게 환자분들이 전형적으로, 공통적으로 많이들 하시는 말씀이거든요.


 아 그래요? 허허 이것 참. 나는 그때 상상도 못했던 일이(아니다. 두 번째 진료에서 ADHD가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정보를 찾아봤는데 거의 같길래, 조금 예상하고 있었다) 현실이 되어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게 얼떨떨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선생님이 쓴 마스크 좀 작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 한 선생님께서 그러셨다.


 - 너는 항상 이렇게, 이렇게 몸을 잔뜩 움츠리고 긴장하고 있어. 툭 건드리면 팍 튀어오를 것처럼.


 그때 그 말이 그렇게 좋게만은 들리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너무 예민하다는 건가? 그런데 어떻게 긴장하지 않고 공부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거지? 정말로 그랬다. 나는 항상 늘 100% 긴장 상태였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해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감각을 곤두세운 채 들어오는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정리해야 했다. 평범한 일상이란 건 정말로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이상했다. 왜 나한테는 자꾸 이런 것들이 보이고, 느껴질까?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가끔 한 번씩 싸한 것이 스쳐갈 때가 있다. 눈치가 그냥 빠른 게 아니다. 무거운 것이 아주 오래 그 공간을 누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누가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지 대강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누가 누구를 만나도 한 번쯤은 꼭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미묘한 순간을 잘 넘어가지 못했다. 잊어버릴 수도 있는 일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과하게 불안해하고, 종국에는 관계를 망쳤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불안감이나 어려움을 다루고 숨기는 것에도 점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내 특성은 자주 나를 힘들게 했다. 특히 연인처럼 가까운 관계를 대하는 데 있어 더욱 그랬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나한테 정말로 문제가 있는 거라면 우울증이나 경계성 인격장애, 뭐 그런 류의 감정 조절 능력과 유관한 질병을 진단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버티고 버티다 용기를 내 방문해본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뒤통수를 세게 한 대 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ADHD라고? 얼떨떨하고 충격적이었다.






 초진 때 선생님께서 내게 무슨 일로 오게 되었냐는 질문을 건네셨는데,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병원을 예약하고 기다리는 몇 주간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얼추 정리해두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건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그냥 갑작스런 눈물만 주르륵 흘렀다. 감정을 추스르고 겨우 입을 뗐다.


 - 분명히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저는 평생을 고민해봐도 모르겠어서. 병원에 오면 뭔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주로 우울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어릴 적부터 장기적•만성적으로 이어져왔던 우울감, 남들이 아무 일도 없는 상태를 0이라고 한다면 나는 기본적으로 -10 즈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 너무 예민해서 그러고 싶지 않아도 남들의 감정을 몽땅 흡수해버린다는 것. 생각이 너무 많고 끊임없이 가지를 뻗어나가는데, 특히 밤이 되면 더 심해져서 잠에 잘 들지 못하는 것. 어찌어찌 어렵게 잠에 들어도 악몽을 꾸거나 가위에 눌리고, 새벽에도 몇 번씩 이유 없이 깨어나는 것.


 가장 심각하다고 느꼈던 문제는 집중력 저하였다. 나는 몇 달 전부터 다니던 대학교를 휴학하고 고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밀도 높은 공부를 매일 장시간 해야 하는데, 투자하는 시간 대비 그날 하루의 산출물이나 공부량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하루에 열한 시간을 공부해도 실질적으로 몰입하는 시간은 세 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지와는 관계없이 공부하던 채로 깜빡 잠에 들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나는 것이 하루에도 수십 번(!)은 되었다(이런 경우 영혼이 반쯤은 현실 반쯤은 몽상계에 있는 듯한데, 몸은 잠들었는데 뇌는 깨어서 공부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졸면서도 조는 줄 모른다. 실제로 나는 공부하다 졸게 되면 눈 감고도 눈 앞에 아까 보던 책이 읽힌다. 물론 내용은 내 머릿속에서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순 엉터리다).


 나는 이 모든 증상이 그저 내가 우울하기 때문에, 그리고 누적된 피로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때 당시 우울에 빠질 만한 개인적 사건이 있기도 했고, 졸아도 졸지 않는 것처럼 조는 건 고등학생 때에도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학창시절에는 돌이켜보건대 우울증의 정도가 심각했는데, 그때에 비해 느끼는 감정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얕고 또 내가 나를 완전히 통제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우울증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심각한 상태는 아닐 거라고 어렴풋이 추측하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주의력 결핍 때문일 수 있다니. 우울해서 → 집중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집중이 안 되어서 → 우울한 것일 수 있다니.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일단 내게 있어 ADHD의 “H(Hyperactivity)”라는 글자가 주는 부정적 인상이 상당했다. 아마 차차 쓰게 되겠지만, 나는 성장환경상 특수교육이라는 개념이 비교적 익숙하고 또 거기에 관심도 꽤나 있는 학생이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라는 단어도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많이 접했다. 물론 돌이켜보면 그것이 항상 때에 맞게 잘 조절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의자를 집어던지는 등, 용어 그대로 과잉행동(Hyperactivity)을 보이는 아동들의 사례이기는 했다. 그런데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나는 주위에서 염려할 만한 과잉행동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입으로 언급하기는 부끄러우나, 지인들에게 받는 평 역시 어른스럽다, 차분하다, 생각이 깊다… 등 '과잉행동'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이어지지 않는 어구들이다. 


 어렸을 적부터 내가 뭔가 남들과 완전히 같지는 않은 것 같아서 스스로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생각해보곤 했다. 우울증 경계성 인격장애 강박증... 이것저것 다 찾아보고선 나한테 끼워넣어 봤다. 그래도 ADHD만큼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은 아마 내가 학창시절에 공부를 꽤 잘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테다. 심지어 학창시절에 제일 잘하고 좋아했던 과목은 국어였는데, 어느 정도 객관성을 담보하고 싶어서 조금만 덧붙이자면 수능에서도 시간을 넉넉하게 남기고 풀어서 한두 개 틀렸나 그랬다. 평소에도 말에 무척 예민하고 섬세한 편이다. 그리고 음... 작가 소개에 이미 써둔 것처럼, 지금 나는 서울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여기에 쓰는 것이 많이 고민되고 조심스럽긴 하지만, 앞으로 내가 쓸 글이 나의 ADHD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ADHD라는 단어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에 반박하는 내용들이 될 것 같기 때문에 굳이굳이 넣어둔다. 사실은 나 스스로 예시가 되어 벌써 하나 깨부순 것이다. ADHD와 지능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 이건 나 역시 갖고 있던 선입견이기도 했다.




*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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