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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20. 2023

0 아니면 1, 모 아니면 도

1. 눈치가 빠른데도 ADHD라구요?


 나는 평생소원이 ‘0의 상태’를 찾는 것이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어쩌면 평생 약을 먹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건 실제로 의사 선생님께서 나한테 하셨던 말씀이다. 사실 이제 ADHD, 특히 과잉행동(Hyperactivity)이 없는 조용한 ADHD는 어떤 병이나 질환이라기보다, 일정한 특성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의 집단을 일컫는 이름표쯤으로 여기는 것이 적당한 것 같다. 또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은 ADHD가 최근 들어 급격하게 변동하고 있는 개념이고, 인터넷 등에서 찾아본 자료들은 나의 상황과는 맞지 않을 수 있으니 적당히 필요한 것만 취사선택하여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는 용도로 쓰라고 하셨다. 집에 돌아와서 성인 ADHD나 조용한 ADHD에 대해 논문을 검색해 봤는데, 과연 이렇다 할 수확이 있진 않았다(물론 내가 한국어 논문만 찾아보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국내에서는 아직 학계의 논의가 그리 활발하지는 않은 것 같다.)


 처음 ADHD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사실 얼떨떨하고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느꼈던 것은 묘한 안도감이었다. 그럼 그동안 내가 게으르고, 멍청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는 말이지? 말하는 것이 별로라는 걸 알면서도 끝끝내 뱉어버려서 실수를 하고, 과하게 예민하고, 불편하고, 인간관계에서 고민하고 불안해했던 것이 그저 내 뇌가 애초에 가지고 태어난 특성 때문이었다는 거지? 아 그러니까… 그 모든 일들이 모두 내 잘못만은 아니었다는 거지?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면,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그렇게까지 힘을 쓸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게 나를 무척이나 기쁘게 했다.





ADHD 빙산. 오늘 포스팅의 제목인 ’1 아니면 0‘이 수면 아래에 보인다.

 콘서타 27mg, 레피졸정, 익셀캡슐, 모사프른에스알서방정, 인데놀정, 데파스정, 졸피신정, 그리고 명인염산아미트리프틸린정(이름은 조금 틀릴 수도 있다). 이렇게까지가 전부 이번 주의 내가 먹고 있는 약이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가 처음 병원에 갔을 때부터 ADHD를 의심하셨는데, 뇌파검사와 종합주의력검사(CAT) 이후 정확한 진단을 받기 전 초반에는 불안감을 잡는 게 먼저라고 하시면서 항불안제와 항우울제 위주의 약을 처방해 주셨다. 널뛰던 감정이 조금 가라앉고 난 뒤에 ADHD를 진단받았고, 전용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두어 달 정도 맞는 약과 용량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병원에 갈 때마다 약 복용이 조금씩 더 편안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아마 타임라인별 투약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처음부터 이 조합의 약을 먹었던 것이 아니고, 맞는 약을 찾기 위해 지금껏 고생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을 걸 잘 알고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아니 그러고 있으니까.


 처음 약을 먹었던 날의 그, 눈앞이 선명해지고 머리가 맑게 개는 듯했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약을 먹고나서부터 느끼는 건 이전에 내가 정말로 변화무쌍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글에 내가 학창 시절 공부를, 그중에서도 국어를 꽤나 잘하고 좋아했다는 것을 짧게 언급했다. 병원에서 ADHD 진단을 받고서 선생님께도 그걸 말씀드리며 물음표를 띄웠는데, ‘아마 생각이 빠른 게 공부할 때 도움이 되었을 수 있죠’ 하는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생각이 빠르다라… 맞는 말이었다. 나는 생각이 무척 많고 또 빠르다. 가끔씩은 뇌 하나를 스무 조각 정도로 나누어 쪼개어서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건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만큼 감정이 요동치는 정도도 커서 컨디션의 기복 역시 무척 심했다. 그게 늘 고민이었다. 기분을 있는대로 드러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데. 안정적이고, 평화롭고, 고요한 사람이고 싶은데. 왜 이렇게 욕심껏 되지를 않지? 그렇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모자라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나는 여태껏 뼈를 깎는 노력을 해 왔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혼자만의 우주 속에 빠져 있는 고냥이…

 0 아니면 1, 모 아니면 도의 특성이 나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지점 중 하나는 인간관계에 관한 부분이다. 우리는 사실 타인을 대하면서 미묘함과 찝찝함을 느끼는 순간이 많지만, 일정 수준 이하의 감정은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넘어가게 된다. 관계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제들은 꼭 ‘반드시,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고 매듭을 지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것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때도 있다. 그런데 그걸 조절하는 것이 나는 잘 되지 않았다. 친구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안 좋아 보이면 기분이 나쁜가? 부터 시작해서 내가 방금 뭔갈 잘못했나? 말실수를 했나? 하며 혼자 오만 가지 생각의 동굴로 빠져들어 가라앉기 일쑤였다. 그런데 실상 그 친구는 기분이 나빴던 것이 아니라 그냥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던 것일 수 있지 않은가. 설령 만에 하나 정말로 기분이 나빴던 것이라 한들 그걸 내 탓으로 돌리고 내 말과 행동에서 이유를 찾는다거나, 아무리 애써 봐도 이유를 찾지 못해 혼자 끙끙 앓는다거나 나까지 덩달아 그 친구의 기분에 맞춰 침울해지거나 불안해질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우울감으로 이어질 필요도 없는 것이고.


 뭐 이런 특성이 좋을 때도 있긴 했다. 우선 남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는 덕분에 사람들의 기분을 금방 파악해서 맞춰주기가 쉬웠고, 친구들은 나를 의지하고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정말 쓸데없는 정보지만 지금 우리 학과 동기들 내에서 내 별명은 ‘OO과 오은영’이다(오은영 박사님 죄송합니다…). 사람들의 감정을 살피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어렸을 때에는 그들의 감정만 알아차렸을 뿐 적당한 대응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이런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이 사람이 원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어렵고 복잡하고 피곤하기만 했던 인간관계 다루기가 어른이 되면서 점점 더 편안해지고 능숙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도 어려운 것은 어려운 것이었다. 여전히 인간관계에서 너무 눈치를 보고 불안해하는 성향은 나를 힘들게 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나는 남의 감정을 잘 흡수했다. 그렇지만 이 특성은 어떤 때에는 내 치명적인 단점이 될 때가 많다. 스스로를 습자지 같은 것이라 느낄 때도 있었는데, 우선 나는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것이 너무 싫다. 전쟁이나 참사에 대한 뉴스를 보면 몇 주를 내내 혼자 울적하다. 그래서 서로 싸우거나 죽이는 영화나 예술작품도 잘 보지 않는다. 사실 몇 달 전 병원에 갔던 것도 이태원 참사 이후 마음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도저히 일상(공부)을 지속할 수 없어서의 이유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은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ADHD가 있는 사람들은 눈치가 없는 거 아닌가?’ 그러면 나는 확실하게 답할 수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나처럼 눈치를 과도하게 잘 봐서, 심하게는 남의 감정을 모두 흡수해버리는. 공감능력이 0이 아닌 1로 발현해버린 나 같은 ADHD도 존재하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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