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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연필 Apr 29. 2024

글을 읽는다는 것

밤샘 공부는 해본 적 없지만 밤새도록 책을 읽는 일은 허다했다. 어렸을 때 공부도, 미술이나 음악도, 무용이나 체육도 엄마 눈에 들 정도로 제대로 해낸 것이 없었지만, 책 읽기만큼은 자신 있었다.

내 나이에 맞든 아니든, 집에 있는 책들은 닥치는 대로 읽었고, 그러다 보면 아침 해가 뜨곤 했다. 어린 나이에도 그것이 참 뿌듯하고 좋았다.


누구에게 칭찬을 받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이야기 속에서 지내다 다시 세상으로 나오면 마치 상쾌한 심장이 된 것 같았다. 아마도 그때 얄팍하나마 내 자존감을 키웠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글을 읽는 것은 내게 친구 같은 취미이자 즐거움, 장점, 위안, 그리고 양분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살면서 이런저런 물결을 타다 보니 어느새 글과의 손을 놓치게 되었고, 그 시간이 길어졌다. 다시 육지로 오르려고 할 때, 글을 대하니 마치 허름한 차림새로 우연히 길에서 옛 애인을 마주친 것처럼 서먹하고 낯설어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동시에 반가웠고, 다시 설레었다.


예전처럼 밤새 읽기는커녕, 집중하는 힘도 현저히 떨어져 읽던 책도 자꾸만 손에서 놓게 되니, 나이를 먹으며 그나마 있던 글구멍도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아 초조해진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나이 탓 말일까? 눈이 흐릿하고, 여기저기 몸이 아프고, 약기운에 멍하고, 쉬엄쉬엄 살고 싶다며 내 게으름을 포장해 자꾸만 '내일'로 미루던 '오늘'이 결국 그렇게 만든 것이다.

생각해 보면, 몸의 기능이 점차 떨어지는 것은 속도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겪는 일이니 그리 억울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쩐지 글구멍이 좁아지는 느낌은 서글프고 속상하여 어떻게든 붙잡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떠 고개를 들면 좋은 글들이 있고, 좋은 글들을 쓰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글들을 어렵지 않게 대할 수 있으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 덕분에 가볍게 나이 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아래 이미지는 본인과 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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