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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Jul 11. 2020

실패해서 다행이다

나도 작가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내리세요”

이제 고작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았을 뿐이다. 보조석에 탄 운전면허 시험 감독은 내리라는 말로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이번이 벌써 세 번 째다. 이번 낙방의 원인은 긴장한 탓에 사이드 브레이크도 풀지 않고 출발을 해버린 것이다. 


트럭에서 내린 나는 터벅터벅 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도로에는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차 유리를 통해 비쳤다. 그 사람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국가고시를 패스한 유능한 사람들 같았다. 


 주변에 수동기어 자동차가 없어 연습이라곤 해보지도 못하고 용감하게 세 번이나 도로주행 시험을 보겠노라고 시험장을 찾아갔다.

한 번씩 떨어질 때마다 ‘아~ 기어는 이렇게 변속하는 거구나’, ‘아~오르막길에선 클러치를 이렇게 떼야하는구나’ 하며 하나씩 배워갔다. 도로주행 시험이 내겐 연습이었고 연습이 곧 시험이었다. 


 나의 세 번째 운전면허시험 낙방 소식을 듣고 친구는 주변에 수동기어 자동차를 빌려 도로주행을 시켜주겠노라고 했다. 연습을 하고 싶어도 수동기어 자동차가 주변에 없어 연습을 해볼 수 없던 터라 그런 도움은 내게 절실하였다. 우리는 한적한 도로로 차를 끌고 갔다. 운전대를 잡고 연습을 시작했다. 


‘부르르릉, 부릉. 틱 ’ 시동 거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엑셀과 클러치를 부드럽게 이어 떼는 것이 시동을 꺼트리지 않는 관건이었다. 발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나는 수십 번 시동을 꺼트려먹었다. 무딘 나의 발끝이 원망스러웠다.

 겨우 1단을 넣고 출발을 하려는데 이내 시동이 꺼져버렸다. 뒤에서는 차가 빵빵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당황한 내 손은 떨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가 말했다.

 “이 도로 위에 이 차 말곤 아무것도 없다 생각해!”

 다른 차를 자꾸 의식하다 보면 긴장이 되어서 더 실수를 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친구 덕에 무사히 도로주행 연습을 마치고 네 번째 운전면허 시험 도전의 날이 다가왔다.


 나의 운전면허 응시 서류에 너덜너덜 많이 붙어있는 접수 인지대는 나의 실패 횟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순간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서류를 접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순번을 기다렸다. 이내 나의 응시번호와 이름이 불리고 1톤 트럭에 나 이외에 또 한 명의 응시자와 감독관이 탑승하였다.

 내 순번은 뒤였다. 뒷좌석에 앉아 먼저 도로주행을 하는 응시자를 관찰하였다. 

젊은 그 남자는 운전이 처음이 아닌 듯했다. 마치 몇 년 동안 쭉 운전대를 잡아온 사람처럼 능숙했다. 감독관이 지시하는 대로 ‘뭐 이런 것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거침없이 내달렸다. 급기야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방향을 바꾸는 여유를 보였다. 내가 마음속으로 감탄을 하고 있던 그 순간!

 “내리세요. 불합격입니다”라는 감독관의 판정. 

운전대를 잡고 있던 그 남자도, 뒤에서 지켜보던 나도 순간 당황스러웠다. 감독관의 지시대로 하나도 빠트림 없이 능숙하게 운전했던 그는 억울했는지 이유를 알려달라 했다. 

“운전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늘 자신의 운전실력을 맹신하다가 사고가 나요. 운전대를 잡으면 겸손해야 됩니다”  불합격한 그 남자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이어 감독관은 나에게 운전석에 탑승하라고 했다. 덜덜덜... 다리와 팔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크게 한 숨을 쉬고 양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았다.

머릿속에 그려오던 그림대로 천천히 시작했다. 기어 변속, 차선 변경, 속도 변경 등 감독관의 지시대로 조금은 느리고 어설프지만 최선을 다했다.

 감독관이 강조했던 겸손한 자세 하나는 합격점이었다. 운전대는 부서 버릴 정도로 꼭 잡고, 몸은 꼿꼿하게 세운채로 말이다. 내가 봐도 너무 불안하고 미숙했지만 다행히 합격 판정을 받았다. 


 드디어 네 번째 도전 끝에 운전면허를 내 손에 쥐게 되었다.

남들 다 따는 운전면허였지만 내겐 엄청난 성공의 기쁨이었다. 세 번의 낙방이 그 기쁨을 몇 배 더 높여주었다.


만약 내가 실패 없이 바로 합격을 했더라면? 나 또한 낙방한 실력 좋은 그 남자처럼 운전이 쉽고 우습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패는 내게 겸손이라는 큰 보상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운전에서 꼭 필요한 자세이다.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며 제대로 배운 운전이었기에 10년 넘게 운전을 하면서 무사고 운전자가 될 수 있었다.


 누구나 실패를 한다. 나 또한 무수히 많은 실패를 겪으며 살아왔다. 돌아보면 지금의 나는 실패의 반복으로 다져지고 만들어졌음을 깨닫는다. 실패는 곧 배움이고 성장의 가능성임을 이제 나는 잘 안다.


 내 지갑 속 운전면허증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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