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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Jun 21. 2020

국밥의 힘

 “오늘 저녁을 외식하러 갈까?” 

 “와~~!!! 국밥! 국밥 먹으러 가요!” 남편의 외식 제안에 어린 두 딸들은 어김없이 희망메뉴를 외쳤다. 언젠가부터 우리 집 외식메뉴는 말하지 않아도 돼지국밥.

 사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집 꼬맹이들은 평범한 어린이 입맛이었다. 파스타나 피자를 더 좋아했다. 그런데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잦은 주말출근이 있은 뒤부터 변해버렸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무슨 마법을 부린걸까? 두 딸들은 국밥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국밥 매니아가 되었다. 10살 7살, 공주를 좋아하는 곱디고운 아씨들이 말이다.


 “또 국밥?” 나는 매번 같은 메뉴가 못마땅하다. 그런 나를 보고 큰 딸이 달래듯이 말한다.

 “국밥 한 숟갈 퍼서 새우젓이랑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공주와 국밥의 조화만으로도 충분히 부조화스러운데 새우젓까지 가담하다니...

 두 공주님들은 역할 놀이에서도 국밥사랑을 숨기지 못했다. 둘째 딸아이는 아이스크림 가게대신 국밥집을 차렸다. 

“어서오세요. 돼지국밥 사세요”

첫째가 손님이 되어 방으로 들어선다. “돼지국밥 주시구요, 새우젓 포장도 되나요?” 

나중에 둘이서 ‘자매국밥’ 집이라도 차릴 기세다.


 국밥 집으로 향하는 벽진 이씨들의 발걸음이 들떠있다. 그 뒤를 못마땅하게 따랐다. 

가게에 들어서자 주인 아주머니가 단골인 우리가족을 반갑게 맞는다. 

“돼지국밥 두 개, 순대국밥 하나 주세요” 남편이 주문을 하자 

“새우젓 많이 주세요!!!” 큰 딸이 거든다. 아주머니는 알았다는 듯 크게 미소짓고 돌아간다.

 얼마되지 않아 검은색 뚝배기에 아직 열기를 품은 채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국밥이 나왔다. 숟가락을 들고 새우젓을 한 숟갈 푹 퍼서 국물에 섞고 휘휘 저었다. 부추무침도 크게 한 젓가락 집어 국물에 담았다. 뽀얗던 국물은 부추무침의 고춧가루 때문에 발그스레한 색깔로 바뀌었다. 

 고슬고슬 흰밥을 한 숟갈 퍼서 입에 넣었다. 따뜻했다. 이내 국물 한 숟가락도 넣었다. 새우젓으로 간이 되어 짭조름한 내음이 입안에 퍼졌다. 매번 먹는 국밥이 내키지 않던 나는 국물 한 숟갈 입에 넣고는 항상 설득 당해버린다.

‘그래, 좋긴하네’

 국물 속에 숨어있는 순대를 건져 올렸다. 집어 든 순대에선 아직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당면과 야채를 너무 과하게 품은 탓에 그것을 감싸고 있는 껍질이 버거워 보였다. 된장을 살짝 올려 입안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커다란 오이고추를 하나 집어 들었다. 콩의 모양이 드문드문 보이는 노오란 집 된장에 푹 찍었다. 아삭아삭거리는 소리가 내 입속에서 귀로 전달되었다. 무언가 속에서 시원하고 통쾌함이 느껴졌다.

 밥 한번, 뜨거운 국물에 순대를 얹어 또 한번. 무언가 심심할 그 맛에 커다란 깍두기 하나 싹뚝 베어물면 입속의 음식물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흰밥의 고소함이 입에 들어오자마자 따뜻하고 진한 고깃국 한 숟가락으로 밥이 촉촉해진다. 속이 꽉 찬 순대가 맛의 풍성함을 더해주고 푹 익어 물컹하면서도 베어 물면 아식한 매콤달콤한 깍두기로 다양한 미각을 깨워준다. 


 아이들도 부지런히 그릇을 비우고 있다. 숟가락 위에 밥을 퍼서 국물에 적당히 적신다. 남편이 그 위에 고기와 새우젓 하나를 살짝 올려준다. 양껏 입을 벌려 만족스런 한입을 넣고는 우물우물 씹는다. 엄지손가락을 척 든다. 


 이제 반 쯤 남은 밥을 말 차례다. 본격적인 국밥을 맛 볼 시간이다. 숟가락으로 밥을 푹푹 눌러주며 뭉쳐있는 밥알들이 국물에 잘 스며들 수 있게 풀어준다. 지금까지 하나하나의 맛을 음미했다면 이젠 이 모든 것들이 함께 빚어내는 맛의 콜라보네이션을 느낄 차례다. 

 숟가락 위에 진한 국물과 밥과 순대가 하나의 세트가 되어 어우러져있다. 최대한 입을 크게 벌리고 와앙~ 하고 입으로 집어넣는다. 모든 것이 조화롭다. 어느 재료하나 혼자 튀지 않고 적당히 어우러진다. 그럼에도 본연의 맛은 잃지 않는다. 

 국물이 바닥에 자작하게 깔렸다. 뚝배기를 기울이니 고깃 살들이 모여진 진국이 경사를 따라 한쪽으로 모여든다. 뚝배기 긁는 소리와 함께 나머지 국물을 살뜰히 모두 먹어치운 뒤 숟가락을 놓았다.

 둘째는 자기 얼굴만한 국그릇을 조그만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마신 뒤 ‘탁’하고 식탁 위에 내려놓는다. 안그래도 볼록한 배가 더 봉긋하게 부풀어 올랐다. 


 국밥이 내키지 않다했던 나는 뚝배기를 한 그릇 다 비웠다. 비어진 뚝배기는 아직까지도 온기를 품고 따뜻했다.

배가 불렀다. 마음도 불러왔다. 

‘행복이 뭐 별 거냐, 이렇게 가족끼리 맛난 거 먹고 함께 있으면 그게 행복이지’

파스타나 돈가스를 먹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만족감이다. 


 두 딸들이 훗날 국밥을 먹을 때 마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내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꽃길만 걷지 않을 것을 잘 안다. 굴곡이 없는 것이 인생이랴. 하지만 그 한고비 한고비 넘을때마다 다시 일으켜세워 줄 힘이 필요하다. 그것은 유년시절 가족 안에서 채워져야만 한다. 

 이미 두 딸들도 국밥의 힘을 안다. 가족과 머리를 맞대며 먹었던 뜨듯한 국밥 한 그릇이 허기진 배뿐만 마음까지도 채워줄 것을. 아빠가 밥숟갈 위에 얹혀주었던 새우젓 한 점이 크나큰 사랑의 소극적 표현이었음을. 

 국밥 한 그릇 덕분에 꽉 찬 가족애에 몸도 마음도 든든하다.

푸짐한 한 상이다
탱글탱글 고소한 순대
새우젓과 부추무침을 더하면 맛이 한 층 깊어진다
7세 국밥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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