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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mi Sep 17. 2018

어른이들을 위한 과학 파티

국립과천과학관 달밤과학파티

국립과천과학관이 과학 파티를 테마로 하여 19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100석 한정 티켓을 발매했다. 토요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2층 자연사관을 개방하여, 전시관 투어, 토크쇼,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8월부터 11월까지 한 달에 한 번 총 네 회를 기획하여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룬다. 지인의 초대로 2회 차에 해당하는 9월 15일 행사에 다녀왔다.

과학관이 폐관하기 전에 도착하니 압도적으로 어린이 관람객이 많았다. 낮의 활기가 아직 남아 있는 과학관 입구에 들어서니 기분이 매우 쑥스럽고 간지러웠다. 클럽에 입장할 때 찰 법한 종이 팔찌를 손목에 걸자 부끄러움은 더해졌다. 가족 단위 관람객이 빠져나가고 마침내 입장이 허락되었다. 듬성듬성 불이 꺼진 전시관 내부로 들어서자 노란 불빛 아래 고요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룡 화석들부터 눈에 들어왔다.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밤의 고요가 내려앉은 전시관은 어딘지 신비로웠고, 마법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었다. 전시물들 사이로 수백만 년의 시차가 교차했다. 속하지 않은 시간대와 속하지 않은 공간에 모여있는 오래된 것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공룡 화석을 곁에 두고 달밤 캔들을 만들었다. 녹인 왁스에 아로마 오일과 염료를 떨어뜨린 다음 잘 저어서 심지를 고정한 별 모양과 하트 모양 틀에 부었다. 간단한 작업이지만 직접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았고, 공기 중으로 부드럽게 퍼지는 아로마 향에 조금 행복해졌다. 노란색 레몬향 캔들과 보라색 라벤더향 캔들을 완성했다. 굳을 때까지 한 시간은 걸린다고 하여 이름을 써서 놓아두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토크쇼와 관련된 진실 혹은 거짓 퀴즈에 스티커로 답을 하고,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푸드존에서 음식을 챙겼다. 생수, 와인, 주스, 빵, 쿠키, 팝콘 같은 간단한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생동하는 지구 SOS 관람관 투어가 있다고 하여 체험관 안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파랗고 둥그런 지구가 있었다. 국립과천과학관의 설명을 인용하자면 과학관은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인공위성으로부터 매일 전송받는 500여 개의 영상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으며, 주요 영상들을 하나의 스토리로 구성하여 해설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실시간 구름 이동, 세계 지진 발생 현황, 밤에 본 지구, 비행기 이동 경로, 6억 년 간 대륙 이동 모습은 꾸준한 인기를 얻는 영상들이다".


고생물학자 이정구 연구관님이 태풍 솔라가 상륙하는 모습, 괴물 허리케인이라 하는 허리케인 플로렌스가 미국 동부에 상륙하는 모습, 밤에 본 지구의 모습, 해류의 이동, 비행기의 이동 등을 해설해주셨다.

좌측 윗편 태풍 솔라의 이동 경로

태풍의 순기능으로 요새 난류성 어종인 고등어가 잘 잡힌다고 농담 섞어 말씀하셨다.

밤에 본 지구

한편 밤을 밝히는 인공조명의 광도에 따라 세계 각지의 개발 격차를 한눈에 간파할 수 있었다. 남북한의 격차는 여전하다. 불빛으로만 보면 대한민국은 거의 섬처럼 보인다. 대륙의 해안가, 나일 강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가로지르는 실크로드 주위가 밝았다. 수천 년이 흘러도 문명은 풍족한 수원과 비옥한 토양을 필요로 하며, 문물 교류와 접근이 용이한 지역 위주로 발달한다. 미국은 서부보다는 동부가 더 밝았고, 호주는 그 넓은 땅에도 불구하고 동부 해안가 도시 일부만 밝게 빛났다. 시각화된 데이터로 인해 국가 간 격차, 지역 간 격차를 이토록 노골적이고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비행기의 움직임

흡사 개미 떼 같아 보이는 연두색 불빛이 모두 비행기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커다란 비행기만 나타낸 것이라는 데도 이 정도다. 하늘 길도 붐빈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토크쇼
자연사관 투어

두 번째 투어 프로그램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초롱초롱한 어른이들 눈빛에 뭐라도 하나 더 알려주고 싶어 허락된 시간의 끝에서 끝까지 열정적으로 화석에 얽힌 이야기들을 설명하는 연구관님 안에는 아직도 공룡을 좋아하는 어린 소년이 살고 있는 듯했다. 토요일 저녁까지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게 고단할 법도 한데 일을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긍지와 열정을 가지고 즐기는 사람 특유의 곧은 기운이 느껴졌다.


어린 친구들이 가끔 와서 그런 질문을 해요. 알로사우루스랑 티라노사우루스랑 싸우면 누가 이기냐고. 아무도 몰라요. 애초에 둘이 싸울 수가 없었거든. 아예 다른 시대에 살아서 싸우기는커녕 만날 수도 없었지.


동심을 파괴하는 이런 설명이 오히려 어른이들의 동심을 깨웠다.


에드몬토사우루스에 대해서는 더욱 애정을 담아 설명해주셨다. 발굴권을 가진 업체에 화석을 입찰해서 과학관으로 가져오기까지 얽힌 이야기에서부터 과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에드몬토사우루스의 척추에 남아 있는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빨 자국, 진짜 화석과 가짜 화석을 구분하는 법까지.


이쯤에 가서는 에드몬토사우루스의 발톱 두 개를 분리해서 우리가 직접 만져보고 무게를 느낄 수 있게 해주셨다. 진짜 화석은 틀을 만들어 하나하나 조립하듯 올려놓은 것이라 분리가 되고 가짜 화석은 전체가 일체품이라 한 군데를 잡아 흔들면 전체가 다 흔들린다는 설명을 해주셨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빨 자국인지는 도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에는 발굴 당시 티라노사우루스 이빨도 함께 발견되었다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입찰 당시에는 에드몬토사우루스의 머리밖에 발견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계약금 선금 지급 후 1년에 걸친 발굴 작업에서 원형 보존율이 90%에 달하는 전례 없이 온전한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그에 더해 티라노사우루스 이빨 자국까지 남아 있는 특별한 화석이라 이제는 값을 매길 수도 없게 되었다고. 똑같은 화석은 하나도 없고 모든 화석이 다 특별하다는 말을 아차하며 쑥스럽게 덧붙이셨는데. 그 티라노사우루스 이빨 화석은 어디 있냐고 여쭈니. 업체에서 화석의 가치를 알고 이후 팔았던 가격의 두 배, 네 배를 부르며 다시 되사가려 했는데, 거절해서 그런 것 같다며, 그 이빨은 안주더라고 쓸쓸하게 대답하셨다.


그러니까 존경할만한 어른이 그토록 귀여울 수도 있는 것이었다.


밤을 새워서라도 해줄 이야기가 많은데 시간이 다한 것이 무척 아쉬우신지 다음에 또 오면 뒷얘기 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뒷얘기가 궁금해서라도 꼭 한 번 더 가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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