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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mi Aug 14. 2018

정치 미드 일곱 편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Madam Secretary

(2014-present)

CBS Madam Secretary

엘리자베스 포크너 맥코드는 전직 CIA 분석관이자 정치학 교수이다. CIA 시절 직속상관이었던 현 대통령이 전원생활을 즐기던 엘리자베스를 직접 찾아가 국무장관 자리를 제안한다. 전임 국무장관이 비행기 사고로 급작스레 사망하면서 국무장관 자리가 공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을 노리며 현 대통령을 위협했던 전임 장관과는 달리 엘리자베스에게는 정치적 야심이 없다.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고, 사람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눈을 지녔지만, 기저에는 공공의 이익과 세계의 평화를 진심으로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둔 워킹맘으로서, 고위직에 오른 여성으로서 겪는 일에 관한 서사도 매력적이지만, 공공의 선을 믿는다는 점이 취향을 저격했다. 인생 드라마가 웨스트 윙(The West Wing)인 탓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인상 깊게 보았던 미국 정치 드라마를 지극히 주관적인 순서로 정리했다.


The West Wing

(1999-2006)

NBC The West Wing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전설의 드라마 웨스트 윙. 때는 가상의 민주당 대통령 제드 바틀렛의 초선과 재선 집권기. 대통령 집무실과 보좌관 사무실이 위치한 바로 그곳. 백악관 웨스트 윙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드라마이다.

농담처럼 떠돌아다니는 이야기 중에 노무현 대통령은 웨스트 윙을 너무 많이 봤고, 이명박 대통령은 한 번도 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이 드라마의 성격을 제법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바틀렛 대통령 본인만 해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고, 보좌진들은 모두 명문대 출신의 워싱턴 정계 엘리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어딘지 허술한 데가 있고, 늘 강자보다는 약자에 더 깊이 공감하며, 본인들이 하는 일에 의미가 있다고 믿고, 어떤 식으로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감탄스러운 점은 주위의 평가나 편견에 휘둘리기보다는 직접 겪은 일만을 진실로 믿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생각한 결과에 따라 행동하며, 행동한 결과에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이다. 이런 돈키호테식 낭만은 에런 소킨(Aaron Sorkin)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세계관이다. 이런 세계관은 케이블 방송사 보도국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뉴스룸(The Newsroom)에서 극대화된다.

뛰어난 이야기꾼에게는 예언자 기질이 있는 것인지. 현실과 평행을 이루는 여러 에피소드가 에런 소킨 시간여행자 설에 불을 붙인 바 있다. 이를테면, 바틀렛의 후임으로 당선된 라틴계 맷 산토스 하원의원이 여러 면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연상시킨 예가 있다. 그게 왜 놀랍냐고? 이 드라마가 언제 종영됐는지 연도를 확인하기 바란다.


House of Cards

(2013-present)

Netflix House of Cards

세련되고 절제된 영상과 음향만으로 압도된다. 사상누각이라는 타이틀대로 시종일관 음울하고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정치보다는 스릴러라 하겠다. 프랭크 언더우드의 정적이 되면 그냥 다 죽는 거다.


Scandal

(2012-present)

ABC Scandal

올리비아 포프 언니 카리스마가 다했다. 정치극의 탈을 쓴 막장 치정 드라마이다. 전문직으로 교묘히 포장한 치정 드라마. 어? 익숙한 향기가 난다고? 맞다. 그레이 아나토미로 유명한 그분 숀다 라임스(Shonda Rhimes)의 작품이다. 올리비아 포프가 이끄는 변호사 군단 글래디에이터는 돈이 있거나, 명예가 있거나, 권력이 있는 이들의 의뢰를 받아 그들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준다. 이상하게 일이 더 꼬이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Veep

(2012-present)

HBO Veep

미국식 풍자의 정수이다. 거의 유토피아적이라 할 수 있는 웨스트 윙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남들 보기에 번듯한 성공에만 집착하는 이기적인 인물들의 노골적 욕망. 찰진 미국 욕의 향연을 듣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Designated Survivor

(2016-present)

ABC/Netflix Designated Survivor

연두교서 발표 중 발생한 테러로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수반, 상하원 의원들이 모두 사망한다. 유사시에 대비해 안전시설에 대기하던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톰 커크먼만이 살아남아 대통령 직을 계승한다. 서열상 내각 관료 중 최하위에 해당하는 데다 장관직에서 해고당하기 직전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정통성이 크게 흔들리는데. 어딘지 지켜주고 싶은 인상의 학삐리 아저씨가 점점 대통령스러워지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새끼 우쭈쭈 하게 된다. 갈수록 망조라 시즌1만 보길 권한다. 그 떡밥 어차피 수거 안 된다.


The Good Wife

(2009-2016)

CBS The Good Wife

정치에 슬쩍 끼워 넣어 본다. 전도연 주연의 한국 드라마로 리메이크되기도 했었다.

주검사 남편이 섹스 스캔들과 횡령 사건에 휘말려 감옥에 가게 된다. 로스쿨 졸업 후 곧장 결혼해서 전업주부로만 생활하던 엘리샤 플로릭은 생계를 위해 로펌에 취직한다. 나이는 많지만 신입이라는 점, 로펌 파트너의 친구이자, 전직 주검사의 아내라는 점이 엘리샤의 위치를 미묘하게 만든다. 이런 미묘한 위치 때문에 엘리샤라는 인물의 균형 감각이 더욱 빛을 발한다. 보면 진가를 알게 되는 어마어마하게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매 에피소드마다 달라지는 소송 건도 재미있지만, 인물들 간 역학 관계에서 오는 동력이 있다. 굿 와이프에서는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상황과 시점에 따라 나에게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가 갈리는데, 그런 점이 기가 막히게 현실적이다. 소재는 단순한데,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연기와 스토리의 짜임새가 모두 훌륭한 명작이다.

퇴근 후 사건 파일을 뒤적이며 와인을 마시는 엘리샤를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와인을 따라 마시게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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