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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mi Sep 27. 2018

진민영 <조그맣게 살 거야>

되도록 지구에 폐 끼치지 않으면서

책 한 권에 사로잡히면 질릴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다. 요즘 나의 최애는 이 얇은 에세이집이다. 머리맡에 두고 잠이 오지 않을  읽기도 하고, 가방에 챙겨 들고 다니며 출퇴근길의 무료함을 달래기도 한다.


이 책은 언제 어느 때 어느 페이지를 펴더라도 명료하고 간결하게 읽힌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삶의 철학이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중한 것에 집중하여, 불필요한 것을 비우고, 단순하게 사는 삶. 스스로 생각한 결과에 따라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상의 규칙을 정하고, 정한 규칙대로 살아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천과 경험을 들어 서술한다. 문체마저 소박하다. 문장이 짧고 직관적이고 군더더기가 없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크기가 작아서 핸드백에 쏙 들어가고, 무게가 가벼워서 누운 채로 팔을 뻗어 책을 들고 보아도 팔이 저릴 일이 없다는 점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얼굴로 받아본 적이 있으신지. 정말로 어디가 잘못되는 줄 알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읽는 이의 관점을 넓혀준다. 내가 소유한 것들로 인해 나 외의 다른 존재들이 어떠한 희생을 치렀을지 생각해보게 한다. 경제적으로 대가를 치르고 원하는 물건을 얻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진정으로 나의 소비에 대가를 치른 것들은 사실 "얼음이 녹아 익사하는 북극곰, 학교를 포기하고 석탄을 캐는 소년 소녀, 플라스틱을 먹고 기도가 막힌 거북이"였음을 알게 된다. 물리적 형태를 지닌 모든 소비재가 자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70억 인구의 삶을 책임지는 지구라는 터전은 물건이 하나씩 만들어질 때마다 그 희생을 감내해야" 함을 알게 된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가를 치른다." 그중에는 "외출 시 마스크를 쓰고, 비싼 돈을 지불하고 식수를 마시게 될 우리 후손들"도 있다. 물건의 소비에서부터 처분까지 나 대신 대가를 치를 지구와 인류와 생명체들을 떠올리면, 필요가 아니라 욕구에 기반하여 물건을 욕망했던 마음이 몹시 부끄러워진다. 교양을 과시하고 싶어서, 원래의 내 모습보다 더 나아 보이고 싶어서, 지금은 아니지만 절대로 오지 않을 그 언젠가를 위해서, 수고한 나에게 보상하려고. 그 어떤 이유도 다른 생명체의 희생을 담보로 잡을 가치가 없다. 헛되고 부끄러운 욕망뿐이다.


"미니멀하게 사는 게 꼭 마음에 드는 명품 하나를 고집해야 정답은 아니다. 저렴한 단 하나의 물건으로 사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이와 같은 말을 통해 미니멀리즘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되어버린 현세태를 되돌아보게 된다. 흰 벽과 나무바닥을 기본으로 한 세련된 인테리어, 무인양품, 이케아, 법랑냄비, 나무주걱으로 표상되는 이미지를 떠올려본다. 한편, 가격과 브랜드를 떠나 가짓수가 소박한 물건들을 쓰임이 다할 때까지 소중히 관리하며 아껴 쓰는 미니멀리스트를 떠올려본다. 무엇이 미니멀리즘의 본질에 더욱 가까울까? 원칙과 본질을 알아보는 눈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돈을 벌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돈 쓰지 않고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남들에게 도움을 주고 사회에 기여하면서 살아도 생존 그 이상을 해낼 수 있다.


무턱대고 의지하고 싶은 이런 문장이 있는가 하면, 마치 내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말처럼 구구절절 공감이 되는 다음과 같은 문장도 있다.


완벽한 제로 웨이스트 한 명보다 의식 있는 미니멀 웨이스트 여러 사람이 더 낫고, 완벽한 채식주의자 한 사람보다 육식을 지양하는 백 명의 사람이 있는 편이 세상을 더 빨리 긍정적으로 바꾼다. 일회용품을 줄이려는 티끌같은 시도가 모여 깨끗한 공기와 대지를 만든다.

할 수 없는 일을 못하는 것에 대해 번번이 자책하고 죄책감을 느낀다면 모든 일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환경을 생각하게 된 계기도 결국 행복이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먹으면서 나는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금 더디더라도, 옳은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믿는다. 다른 사람의 행복과 지구의 안위를 생각하는 일이 나의 행복과 맞닿아 있음을 믿는다.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말을 가만 음미해본다. 소중한 것을 지키는 일이 결국 정의로운 일이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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