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 정착을 했습니다

머리말

by 푸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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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인호 작가의 소설 중에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라는 것이 있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생애 마지막으로 쓴 책이 바로 그것이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책은 어느 날 잠에서 깬 주인공 K가 익숙한 풍경 속에서 사소하게 변한 일상의 것들을 냉담하게 써 내려간 것이다. 다소 파격적인 내용임에도 이 책이 나의 주의를 끌었던 건 낯선 타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 환경과 연관이 있지 싶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원하는 일을 찾아 어찌어찌 스물네 살에 이곳, 서울로 터를 옮겼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어떤 곳일까?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일까? 촌스러운 환상만큼이나 외딴곳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부산을 떠나 사는 것은 내겐 도전과 다름없었고 애석하게도 꿈 하나로 올라온 서울에서의 생활이 모두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혼자의 시간이 길어졌고 있는 그대로의 나와 대면할 기회도 늘어났다. 외로움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이게 했고 생각의 꼬리를 사정없이 잡아당겨 놓기도 했다. 예전에는 몰랐던 '내가 지극한 효녀라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됐다. 그 이후로 눈물과 후회와 연민도 많아졌다.


그렇다고 완전히 불만족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SNS에서 떠들어 대는 유명 맛집도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어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고, 실력에 끈기에 열정까지 더한 사람들도 참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을 때 주저 없이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공방이 널려 있고, 지나가는 길에 이름만 들어도 아는 연예인을 아무렇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 덕분에 잦은 피로를 경험하면서도 간간히 파이팅을 외칠 수 있다.


서울살이 8년 차, 어디에서 사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정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내가 어떤 곳에 살지를 결정하고 그곳에서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행운이라는 생각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이동하거나 또는 이동당하고야 마는(?) 현실이니까. 그래도 나만 이렇게 살고 있지 않구나 하는 이 사실이 어떨 때는 큰 위로가 된다.


반인반수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나는 반서울인, 반부산인이다. 경상도 사투리에 능통하면서 표준어 구사 능력도 제법이다. 부산 관광 코스를 기가 막히게 추천해 줄 수 있으면서 서울 지하철 노선과 핫플레이스에도 빠삭하다.


시작이야 어찌 됐든 불시착하게 된 이곳에서 잰걸음으로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를 담아 보고자 한다. 이건 1년 365일 향수병에 몸서리치는 한 인간의 하소연이자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매일을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군분투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