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솔 Jul 29. 2018

나는 정말 착한 사람

나는 정말 착한 사람이다.

내가 정말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2016년 봄에 있던 일이다. 2016년 5월의 어느 주말이었는데 그날따라 스타벅스 그린티 프라푸치노가 너무나도 먹고 싶은 날이었다. 별다른 수입 없는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에게 당시 6000원이 넘는 스타벅스 프라푸치노는 꽤 비싼 음료였다. 맛있는 녹차쉐이크에 달콤한 휘핑크림까지 올려진 프라푸치노를 떠올리며 마실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에이 비싸고 살만 찌는데 그냥 먹지 말자.'

프라푸치노의 유혹을 떨쳐내고 필요했던 생필품을 사러 다이소에나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는 다이소 두 곳이 있는데 집 근처 역 앞에 한 곳, 내가 다니는 학교 앞에 한 곳으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두 곳이 있다. 사실 거리로는 역 앞 다이소가 훨씬 가깝지만 더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학교 근처 다이소로 향했다. 

'그래 잘했어. 돈도 아꼈고, 살찌는 일도 안 했어.'
스스로에게 칭찬 한 번 해주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이소로 가는 중이었다.

우리 집에서 학교 근처 역 다이소를 가려면 학교 정문을 지나친다. 이어폰을 끼고 신나게 음악을 들으며 매우 빠른 발걸음으로(나는 발걸음이 매우 빠른 편이다) 정문 가까이에 달했을 즘에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았다. 쥐어 잡는다의 그런 '잡기'는 아니고 그렇다고 툭 친 것도 아닌 살짝 잡는 정도라고 말해야 할까, 아무튼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허겁지겁 나를 따라온 것 같이 숨을 헥헥 쉬며 그는 "저기요 저 이상한 사람 아닌데요"라며 말을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좀 도와줄 수 있냐고 물으며 자신의 자초지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다음카카오에 다니는 자신은 경희대학교에 세미나 차 방문했는데 어젯밤 버스에서 잠이 들어 지갑과 휴대전화를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본사가 있는 제주도에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지갑이 없어 갈 수도 없고, 휴대전화가 없어 돈을 부탁할 사람이 없다며 나에게 교통비를 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의 말 중 나의 경계를 무너뜨린 핵심적인 내용은 자신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닌데 지금 어쩔 수 없이 제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너무나도 어이가 없지만 나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얼마 드리면 되는데요..?" 

그는 공항에서 제주행 항공권의 현장 판매 가격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제주항공이 4만 원 정도이고 대한항공이 8만 원이고요, 여기서 인천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 3만 원 정도고, 제주공항에서 회사까지 가면...."

그 당시 나는 항공권 가격을 너무나도 완벽히 알고 있기에, 다음카카오 본사가 서울에서 제주로 옮겨간 사연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기에 그가 정말 다음카카오에 다니는 사람인 줄 알았다. 게다가 그는 내 머릿속의 전형적인 엔지니어 차림인 빨간 체크 셔츠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사기꾼 같지도, 거지 같지도 않은 차림이었다. 

그는 자신이 제주에 도착해서 회사에 돌아가면 지인에게 부탁해 바로 돈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평소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는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그런데 제가 현금이 없어요.." 그때 그와 나는 새마을금고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새마을금고를 가리키며 "여기 ATM 있고, 저기에 우리은행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평소 우리은행을 이용하는 나는 그와 함께 우리은행 쪽으로 향했다.

우리은행 앞에서 그는 자신은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은행 ATM에서 항공편과 택시비를 합친 금액인 12만 원을 인출하고 은행 밖으로 나왔다. 그는 은행에서 한 5m 정도 떨어진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돈을 전해주고 내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아무것도 없다던 그는 재킷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자신의 손에 내 계좌번호와 전화번호를 적었고 자신이 다음카카오에 다니는 최진욱 과장이라 말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나는 무언가 또 걱정은 되었는지 그에게 명함을 달라 했는데 그는 지갑이 없어서 명함도 없다고 답했다.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나는 그에게 12만 원을 건네주었고 그는 내 돈을 받은 후 바로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여기까지 다 읽지 않아도, "저 이상한 사람 아닌데요~"부터 이미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벌써 1년 반이 지난 지금이야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어 피식거리며 적고 있지만 그 당시 그와 헤어지고(?) 다이소에 들러 살 것을 산 후 집에 되돌아온 나는 엄청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내가 그의 사기에 완전히 넘어갔음을 증명하는 부분은 내가 그가 제주도에 도착했을 법한 시간까지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그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까, 입금이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신한은행 폰뱅킹 번호로 3번이나 거래내역 확인 전화를 걸었다.(당시 나는 폰뱅킹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1원도 입금되지 않았고 내 전화기는 조용했다. 그제서야 비로소 내가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평소 사람을 잘 못 믿는 내가 이러한 사기를 당했다는 점에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내가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100프로 확신하지 못했다. 믿을 수 없었다. 6000원 아끼고 좋아했다가 길에서 12만 원을 뿌린 내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그 와중에 나는 최진욱을 구글링하며 실제 다음카카오에 재직 중인 최진욱님의 페이스북 계정을 찾아냈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나의 사연을 전하며 혹시 다른 피해자로부터 받은 연락이 있는지, 회사에 동명이인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없다고 했다.. 

다음 날 일을 친구들에게 말하니 친구들은 말도 안 되는 사기에 어떻게 넘어갈 수 있냐며 화를 냈다. 동서울터미널 앞에서 이러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을 자주 보았다던 한 친구는 나에게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하자고 했다. 사실 이미 내가 겪은 일이 신고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증거도 없고, 만약 그를 찾는다 하더라도 그가 손에 적은 계좌번호가 지워져 보내지 못했다고 하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와 같은 피해자가 또 있을까 싶어 학교 근처 파출소로 향했다. 소장님께 내가 겪은 일을 설명하니 이런 경우는 없었다고 하시며 내가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는, 100번 공감하는 말씀 한마디를 하셨다.

"사기를 당해서 힘든 건, 그 돈을 잃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런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에 분해서야."

백번 맞는 말이다. 사실 내가 잃어버린 12만 원은 프라푸치노 20잔으로든, 쇼핑으로든, 아니면 어떻게 썼는지도 모를 자질구레한 소비로든 사라졌을 돈이다. 하지만 6천 원 아끼며 행복해하다 12만 원을 길에 버렸다는 사실에, 만약 이 돈을 정말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썼다면 기분이라도 좋았을 것이라는 사실에 너무나도 화가 나고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벌써 일 년 반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 나에게 이 에피소드는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냉정하고 차가워 보이는 내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며, 길에서 나를 붙잡는 행인을 과감하게 지나칠 용기를 주었다. 



나에게 자신을 다음카카오에  재직 중인 최진욱 과장이라 소개한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도 누군가에게 기발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사기를 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나쁜 사람은 언젠가는 결국에 천벌을 받을 것이라 믿고 이 사건은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얼마 전에도 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 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친구처럼 반응한다. "그걸 네가 당했다고?", "말도  안 돼", "너 정말 착하구나!"
누군가가 나에게 불쌍한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할 것이냐 묻는다면 이 에피소드를 말해줄 것이다. 


사기는 누가 당할지 모르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기를 당한다고? 바보 아니야?"라고 생각한다면 그 모습은 내가 이 사기를 당하기 전의 모습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비록 돈은 잃어버렸지만 나는 당시 최선의 선택을 내렸던 것이라 생각한다. 연기대상감인 그의 불쌍한 척에 모른 체 하고 지나칠 수 없었고, 모른 체 하고 지나쳤다면 나의 무정함에 스스로 실망했을 것이다. 나는 인과응보라는 말을 믿는다. 그는 분명 자신의 행동을 반성할 기회를 마주할 것이라 믿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