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서고 고민 끝에 최선을 결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이 잘못되어서야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일이 벌어지기 직전으로 돌아가 나의 선택을 번복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한때는 야속하다 생각했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원래 그렇다.
영화는 잘못된 선택에 대한 그 책임을 말한다.
흔히 보게 되는 야쿠자 영화는 야쿠자들의 거친 삶, 조직 간의 혈투, 잔인한 죽음 등 자극적인 장면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야쿠자와 가족>은 폭력배들의 살벌한 모습 대신 '일상인'으로서의 야쿠자의 민낯을 드러낸다. 더구나 그 이야기는 절정을 한참 지나 몰락의 길을 걷는 야쿠자들의 말로를 그린다. 그것도 모자라, 흔히 화려한 전투 끝에 장렬히 전사하는 영웅스러운 클리셰를 용인하지 않는다. 직장인으로 치면 정년퇴임을 한 또는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잘린 야쿠자들이 생활고에 찌들어 간신히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심지어 물고기라도 잡겠다고 그물을 든 채 물속으로 들어가는 노년의 야쿠자들의 모습은 초라함을 넘어 하찮을 지경이다.
물론 몰락해 가는 야쿠자 겐지의 삶을 보고 있자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일견 변명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충분히 죗값을 치렀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겐지가 어린 시절 얼떨결에 하게 된 선택에 대한 책임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사실 잘못된 선택의 대가가 모두에게 공정하고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어쨌든 겐지는 더없이 냉정한 대가를 치른다. 결국 영화는 비극적으로 끝이 나지만, 비극이 아니기도 하다.
학창 시절 학교를 주름잡는 아이들이 있다. 다른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어 마치 무리의 왕인 것처럼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아이들. 폭력을 일삼았던 그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에게 주어진 비정상적인 권력의 대가는 아마도 자신이 한참을 낮춰보았던 선량한 학생들의 '역전'일 것이다. 찌질하게 공부만 하던 아이들은 세월이 흘러 좋은 직장의 '갑'이 되고 학창 시절 왕으로 군림했던 놈들을 부리게 된다. 물론 역전되지 않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는 현실이지만 그 확률은 높지 않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항상 옳은 선택을 할 수는 우리에게 적어도 ‘책임’ 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기 위안이자 만족같지만 별수있나. 그나마 이렇게라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만족해야지.
우리는 이토록 비인간적인 삶을 살기에 인간적인 ‘일말의 부분’에 더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주어진 책임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감당하느냐는 그래서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