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 야속하지만, 착한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은 없다, 고 믿는다. 아니 확신한다. 그저 덜 나쁜 사람이 있을 뿐이다. 너무나 선량해 보였던 사람들이 믿음을 배신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며 살아왔기 때문인데 비단 나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덕분에 자연스레 사람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고 그만큼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뜻밖의 장점이 생기니, 별일이다.
나 스스로만 돌아봐도 그렇다. 사실 난 나쁜 놈이다. 실은 착하다고 생각하며 말만 겸손하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나쁜 놈'에 속한다고 객관적으로 판단한다.(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편이다) 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을 수도 없이 한다. 물론 몰래 한다. 잘 들키지 않을 뿐이다. 교묘하며 음흉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의 악함을 고백하는 곳이 아니기에 자세히 적을 수는 없다.
오래된 영화 중에, 제목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자신의 생각이 머리 위에 글로 표시되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걸 보고 가슴이 철렁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평범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쁜 놈이라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적으면서 생각해보니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왠지 기분이 가라앉는다.
어쨌든 우리는 나쁜 놈만 있는 세상에 살며 덜 나쁜 놈을 찾기에 바쁘다.
"사람을 저렇게 잔인하게 죽이다니. 아까 그놈은 고통 없이 단번에 죽였는데 말이지. 아무래도 아까 그놈이 더 나은 것 같은데 그놈을 응원해야겠다. 그러고 보니 잘생기기까지 했잖아. 역시 잘생기고 볼일이라니까."
어처구니없는 '웃긴' 세상이지만 애초에 큰 기대가 없으면 또 그러려니 하고 산다.
‘누아르’라는 장르의 영화는 대중에게 꾸준히 사랑받는다. 나도 즐겨본다.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 불편함이 주는 자극에 끌리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우리의 삶은 지극히 현실적인 생활 밀착형 자극의 연속이니, 잠시나마 다른 삶을 꿈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야! 넌 손이 없니? 발로 운전해? 깜빡이 킬 줄 몰라?”
“내가 보여줄게 손이 있는 줄 없는지. 일루 와. 이 악물고 와라.”
또 어쩌면 그냥, 대놓고 나쁜 놈들이 나오니 생각할 필요가 없어서 누아르를 찾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은 교묘한 나쁜 놈들 투성이라 우린 늘 덜 나쁜 놈을 찾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아야 한다.
생각해보니 나는 나보다 더 나쁜 놈들을 보며 나 정도의 ‘악함’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안도와 ‘위로’를 얻기 위해서 찾아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일종의 ‘힐링’이랄까? 힐링이 뭐 별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