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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진 Jun 02. 2022

덜 정의로운 영웅을 바란다

미스 슬로운


  천천히 곱씹으며 들어도 이해를 할까 말까 한데 정신없이 흘러가는 그녀의 말들을, 그것도 자막으로 읽다 보면 이해는커녕 쫓아가기 바쁘다. 대충 총기의 무분별한 사용을 억제하고 총기 이용 시 신분 확인을 하자는 법안을 발의하자는 쪽과 이를 반대하는 쪽의 경쟁 구도인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업계 최고의 로비스트 슬로운이 보여주는 전략들이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한다는 점이다.


  ‘어쩜 저렇게 똑똑할까? 그리고 멋있을까?!’


  어디선가 직장의 리더 중에는 소시오패스 성향이 높은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이다. 이는 다시 말해, 리더가 되려면 소시오패스가 돼야 한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슬로운은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승리를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는다. 동료의 아픔 따위는 그저 승리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온갖 불법과 편법이 사용된다. 누군가는 그런 슬로운을 공격하고 비판하지만, 슬로운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기발함과 저돌성이 돋보이는 슬로운의 모습에서 희열을 느낀다. 

  사실 현실의 악당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교묘하고 강하며, 악랄할 뿐 아니라 늘 이기는 편이다. 반면 착해빠진 '우리 편'은 온갖 규율과 규칙, 법과 정의를 따지느라 악당에게 당하기만 한다. 그러니 늘 이기기만 하는, 그것도 통쾌하게 이기는 슬로운이 얼마나 멋져 보이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영화의 마지막 슬로운은 정의를 위해 혹은 자신의 완벽한 승률을 위해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든다. 그 마지막 한 수는 무려 영화의 시작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치 '유주얼 서스펙트'의 절름발이가 형사와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비밀이 시작되듯 슬로운은 여러 변수를 예상해 마지막, ‘비장의 무기’까지 준비한 것이다.

  슬로운의 행보를 보면 단지 정의를 위한 전략이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승리를 향한 순수한 목적의식이 더 컸을 뿐이다. 이기기 위해, 맡은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의 열정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때로는 덜 정의로운 영웅을 기대한다. 악당은 총, 칼, 폭탄을 들고 달려드는데 현실의 ‘착한 영웅’은 정정당당해야 한다며 맨손으로 싸우는 미련한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그러다 처참히 박살 나며 그래도 난 정의로웠다고 말하는 자기 위안 혹은 자기 합리화의 모습에 없던 화가 날 지경이다. 

  어차피 세상에 완벽히 선한 사람은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 그냥 좀 ‘적당히’ 정의로웠으면 좋겠다. 적어도 영화 속에서라도 말이다. 그 ‘정의로운 약함’을 위해 말도 안 되는 생명력과 천운을 부여하는 비상식적인 서사를 용납하고 이해해줄 시대가 지났음을 인정하자. 이 영화에 대한 대중의 높은 평점이 그 시대에 대한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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