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태진 Dec 06. 2023

이토록 인간적인 자식 사랑

더 웨일

  사랑 때문에 남자의 모든 것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그의 희망, 미래 따위가 폭풍 속으로 휘몰아쳐 들어가고 덕분에 죽음을 앞두는 극한의 순간이 오고 만다. 그럼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이해하기 힘든 얘기지만 전혀 짐작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자식으로 태어나서는 잘 몰랐던, 하지만 자식을 낳고는 단숨에 이해되는 ‘자식이 존재하는 세상’. 영화는 그 자식에 대한 한 남자의 사랑, 기구한 사연을 들려준다. 

  영화 속에서 딸을 향한 남자의 애정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마치 그의 인생을 움직이는 작은 등대라도 되는 것처럼, 남자는 오직 등대를 향해 거대한 덩치로 천천히 전진할 뿐이다. 그 등대가 요동치며 몹시도 불안해 보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대체 왜 이렇게나 뜨겁고도 절대적일까?     


  자식을 갖게 되면 자식을 갖기 전까지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차원이 다른 공간을 넘어선 것 같은 기분인데 나 역시 자식으로 태어났음에도 이렇게나 다른 세상이 있음을 몰랐다는 것이 새삼 또 놀랍다.    

  문득 이런 유별난 감정은 오직 인간만이 갖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아니면 번식하는 세상의 모든 생물이 다 이렇게 생겨 먹은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른 생물들 역시 ‘번식’에 대한 집착과 애정은 대단하다. 비록 내가 죽을지언정 자식을 위해 이 한 몸 바치는 생물들이 얼마나 많냔 말이다. 자식들의 영양분을 위해 암컷의 먹이가 되는 수컷이 있는가 하면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해 입 안에 넣어 키우는 물고기까지 존재한다. 그저 인간의 표현 방식이 좀 더 복잡하고 섬세할 뿐이지 다른 동물들 역시 자식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다를 바가 없다. 다시 말해 자식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단순히 프로그래밍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인간이 갖는 감정으로서는 드물게도 순수하다.      


  

  남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부인과 아내를 버리고 떠난 과거를 안고 있다.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힘겹게 쟁취한 사랑이라면 행복하기라도 했어야 하지만, 벌이라도 받는 듯 얼마 후 연인은 자살한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 동시에 이제 모든 것을 잃게 된 남자는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영화 속에서, 남자가 그 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묘사되지 않지만, 현재 남자의 모습으로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폭식으로 인한 고도비만으로 당장이라도 생명이 꺼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남자. 그럼에도 그의 폭식은 멈추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죽고 싶지만, 간신히 삶을 버티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식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만큼은 온전히 남아,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되고, 그 갈망이 그를 병들게 한 것이다.     


 

  남자의 건강을 걱정하며 영화를 보는 내내 그가 죽지 않기를 바랐다. 남자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실은 딸이 더욱 걱정되었다. 물론 영화가 혼자 남을 딸의 슬픔과 앞으로 겪게 될 아픔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겠지만, 그런 가상의 미래조차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숨 쉬는 것, 말하는 것조차 위태로웠다. 자기 잘못을 죽음으로 갚고자 하는 듯 병원에 가야 할 돈까지 모두 딸에게 주겠다며 고집을 피운다. 

그런 남자를 향한 딸의 마음 또한 혼란스럽다. 애초에 아빠를 다시 찾은 이유가 단순히 학교의 과제 때문인지 아니면 필요를 가장한 그리움 때문이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부모를 향한 숨길 수 없는 애틋함이 마음을 울린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남자가 용서를 바라는 마음과 방식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딸이 정말 바라는 용서가 어떤 것인지는 묻지 않은 채 자기 파괴적인 방법으로 용서를 구하는데, 비록 큰돈을 딸에게 남겨주겠지만 아빠의 죽음은 딸에게 있어 또 다른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 간의 인연을 끊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냔 말이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 딸은 자신에 대한 아빠의 마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극적인 화해를 이룬다.      


  이토록 인간적이고 원초적인 사랑이라니. 어느 것 하나 진실한 게 없는 이놈의 세상이라며, 불만으로 가득 찬 중년이 되어버린 요즘. 부녀의 애틋한 모습을 보며 사랑이 여전히 사랑스럽기를 바라는 ‘순수함’의 마지막 발버둥인 것 같아 눈물겹다.      

매거진의 이전글 덜 정의로운 영웅을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