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이즌 제로 던
호라이즌의 두 번째 이야기 ‘포비든 웨스트’가 나왔다. 호라이즌에 대한 그 명성은 익히 들어온 터라 해보지도 않고 일단 기대부터 했다. 모두 감탄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던 작품 아닌가. 심지어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왔는데 난 아직 첫 번째 이야기 ‘제로 던’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조급해졌다. 심지어 플스 5도 없는 주제에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언제인가 ‘제로 던’이 무료로 풀린 적이 있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운로드하여 두었기 때문에 언제라도 시작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팍팍한 일상 속에서 게임을 즐길 여유는 없었고 미루고 미루다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압박에 못 이겨 기어이 며칠 전 시작하였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시작은 불편했다. 어린 시절의 에일로이가 영화 <사탄의 인형> 속 인형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 가장 큰 공포를 주었던, 덕분에 어떤 인형과도 함께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던 사탄의 인형. 이름부터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사탄이 아끼는 혹은 가지고 노는 인형이란 뜻 아닌가. 그런 인형과 비슷하게 생긴 에일로이의 어린 시절 모습은 게임의 몰입을 방해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버텼고 다행히도 인고의 시간은 길지 않았고 에일로이는 금방 자라 사탄의 인형에서 벗어났다.
게임은 인류가 어떠한 이유로 멸망하고 이후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는데 그곳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기계들이 살고 있다. 그 기계는 인간들과 공존하며 살고 있는데 어느 날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기계들이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에일로이는 특별한 부름에 이끌려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힘겨운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드러나는 멸망 이전 인류의 비밀과 현재의 비밀들이 겹치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게임 속에는 신비한 자연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여진다. 곳곳에 위치한 성과 마을은 마치 고대의 어느 제국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래픽이 멋지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현대적인 풍경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내놓던 다른 게이머들만큼의 감동은 느끼지는 못했다. 오래된 건물과 반복되는 자연 풍경은 다소 단조롭고 지겨웠다.
하지만 호라이즌 만의 특별한 볼거리는 따로 있다. 바로 공룡 모양을 한 기계들이다. 마치 갑옷을 두른 것 같은 기계들은 ‘세련된’ 공룡의 모습이었고 역시나 생김새와 걸맞은 강력함과 민첩함을 자랑했다. 각각의 기계들은 저마다의 능력과 기능이 달라 상성을 이용한 공격과 방어가 필요한데 조작이 서툰 나는 그냥 무조건 아무 버튼이나 누르고 녀석들이 죽기를 바랄 뿐이다. 무조건 ‘쉬움’ 설정으로 하는 게임이지만 그래도 나는 늘 어렵다.
보통의 아포칼립스 게임들이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의 생존기를 그린다면 이 게임은 생존기를 넘어,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낸 인간들은 역시나 어리석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이란 동물의 한계를 보여주고 그 한계를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영웅’밖에 없다는 게임 속에나 존재하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모자람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문득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게임과 영화, 책 등이 끊임없이 나오고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소비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우리는 이미 우리의 실패와 멸망을 짐작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 마치 ‘우리 모두 알잖아 이렇게 된다는 거. 그러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거 알지’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경고하지만, 누구도 그 해결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 지금의 우리처럼 말이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지만 역시 인간은 어리석고 나야 뭐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나와 우리는, 어리석기에 이토록 사는 게 힘든 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