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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니면 망해' 리더에서 '나 없어도 잘돼' 리더로

과도한 책임감에서 여유와 신뢰로, 리더십의 진화

한국대학생인재협회(이하 '한대협') 초창기 내가 초보 리더였던 시절을 잠시 회상해 본다. 그 당시 나는 신입사원으로 전략기획실에 입사했을 때였고, 한대협은 이전 기수 대학생 회장이 자기 세력을 대거 만든 뒤 잠적해, 그 여파로 60여 명이 빠져나간 상황이었다. 남은 사람들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고 그 가운데에는 리더로 세울 만한 사람이 없었다. 나 역시 리더로서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조직의 위기 앞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 상황에서, 나와 비슷한 시기에 취업했던 다른 리더들이 한대협 일에 슬그머니 발을 빼는 걸 보면서 고독감과 동시에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책임감, 부담감, 사명감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대학생들을 모으기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속 기획했다. 그 결과 50여 명의 대학생들이 모였고, 그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내 자원과 역량을 200% 쏟아부었다. 회사 생활을 병행하면서도 기획, 발표, 시간 관리, 학점 관리 등 다양한 교육을 제공했고, 그들의 기획서, 발표, 자기소개서, 면접 등을 피드백했다. 보고 체계와 회의 체계도 모두 다시 잡았다. 그 당시 아이들이 내게 배운 뒤 취업까지 성공했지만, 그들 중 현재 한대협에 남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물론 그들의 후배로 들어온 대학생들이 성장해 일부가 지금 함께하는 실무진들이 된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당시에 느꼈던 허탈감은 참으로 컸다.


돌이켜보니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은 순간적인 사명감을 느끼게 하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리더의 정신 건강에 해롭다. 첫째, 지나치게 애썼기 때문에 성과가 나지 않았을 때 허탈감과 실망감이 더욱 크다. 이로 인해 부담 없이 다시 시도하고 도전하기가 어렵게 된다. 둘째, 결과가 어떻든 '나 아니면 안 돼'라는 부담감에 짓눌려 번아웃이 쉽게 온다. 셋째,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은 자칫 교만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교만은 자기도 모르게 말과 제스처, 표정으로 드러나며,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준다. 리더로부터 무시당하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팔로워들의 마음은 리더를 떠나게 된다.


(만약 잘 훈련받은 다른 리더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에 빠져 있다면, 자신의 존재가 조직에서 희미해질까 봐 불안해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또한, 나는 왜 다른 리더들을 신뢰하지 못하는지, 왜 위임을 어려워하는지 깊이 성찰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문제는 타인이나 환경이 원인이라기보다, 자아존중감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아 불안감이 높아진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리더로서 20여 년의 연륜을 쌓으며 힘을 빼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 열심만큼 사람들이 빠르게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르쳐준 내용을 체화시키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반복과 시간이 필요하다. 나 역시 절대적인 훈련의 양과 시간이 축적되어 성숙해졌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서도 인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많은 대학생들을 훈련시키면서 그들의 실력보다 인성과 태도, 가치관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는 점을 절감했기 때문에 더욱 조급해지지 않게 되었다. 성숙한 마인드셋은 양질의 교육 아래 반복적인 자기 성찰이 지속적으로 축적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리더십이란 모든 일을 혼자 완벽하게 해내는 능력이 아니라, 팀원들에게 적절히 위임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다. 나는 '나 아니면 망해!'라는 초보 리더의 마인드에서 벗어나 '나 없어도 잘 돼!'라는 새로운 태도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 태도는 일을 덜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팀원들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다. 그들을 믿고 맡겼을 때, 그들이 그 신뢰에 응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리고 '나 아니어도 이 조직은 잘 돌아간다'는 생각은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겸손한 마음은 내 리더 역할에 대한 감사를 잃지 않게 하며, 함께 일할 때 윤활유 역할을 한다.


'나 없어도 잘 돼'라는 생각을 가진 리더는 여유와 안정감을 누리며, 팀원들과 견고한 신뢰를 형성한다. 이러한 리더는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며, 팀원들은 리더의 신뢰를 바탕으로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성장하게 된다. 팀원들은 진정으로 자립하게 되며, 리더는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결국, 리더가 가진 기본 마인드의 작은 변화가 장기적인 동반 성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사진은 Creatas 님의 작품입니다. Freeimages.com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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