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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긴가 Apr 24. 2020

미지근한 온도에 마음 차 우려내기

녹차와 홍차는 3분 이내에 70에서 80도에 우려야 제맛이 난다. 높은 온도에서 잘 우러나오는 차의 쓴맛과 떫은맛을 가진 카페인과 폴리페놀,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잘 우러나오는 감칠맛을 가진 아미노산을 가장 조화롭게 우려낼 수 있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도.


칼칼한 국 요리 좋아하고, 쌉쌀한 커피도 좋아하고, 시원한 맥주도 좋다. 그런데 유독 차는 손이 가질 않는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참 아름다워 보이는데 정작 그 맛은 아직 깨우치지 못했나 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그 깊은 맛을 알게 될까. 울렁이는 이 마음을 아직 정 붙이진 못한 차를 마음으로 먼저 우려 본다. 맹물 같기도 쓰기도 떫기도 그사이에 감칠맛이 나는 인생의 맛을 즐겨보고 싶어서.




다시 찾아온 나를 마주하며 지루함과 방황과 고요함 그 어딘가를 헤매던 어느 날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티브이를 켠다. 유튜브 속 이런저런 한국소식을 듣는다. 코로나 19로 기대했던 휴가도 취소한 채 장보는일 외엔 밖엔 나가지도 못하는데, 야속한 듯 창밖은 몇 주째 완연한 봄 풍경이다. 여유 있는 지금이 좋으면서도 답답하고, 티브이 속 앞으로의 전망들은 애써 다독이는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이맘은 아는지 모르는지 나른하니 잠이 온다. 슬그머니 자세를 고쳐 잡고 세상 제일 포근한 남편의 무릎에 기대어 슬그머니 안 자는 척 잠이 든다.


잠이 많은 나는 낮이며 밤이며 종종 남편의 무릎을 어깨를 빌린다. 나와는 정반대인 남편은 고맙게도 그런 이해할 수 없는 내 잠을 그러려니 자신을 내어준다. 몇 분이 지났을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옅은 티브이 소리와 함께 눈을 뜨는데 잠결에 지금이 현실인지 꿈인지 헤매는 나에게 내가 속삭였다.

아. 좋다. 평온해.

그 간질간질한 속삭임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잊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가진 행복함을. 다시 찾아온 나에게 그럴싸한 정답을 내어주려 마음이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헤매는 동안, 코앞에 있는 짧지만 간결한 답을 미쳐 보지 못했다.




그렇게 나에게 다시 찾아온 나는 어느 날 툭하니 츤데레처럼 힌트를 던져주고는 츤데레처럼 다음날 또다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몰라 심술부린다. 그 심술에 괜스레 공허해지려는 내 마음을 나는 어제의 힌트로 답을 찾아본다.

지금, 지금의 나에게 집중할 것.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이 삶의 온도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맛있는 마음 차를 음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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