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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긴가 Apr 18. 2020

발걸음을 떼어내기

나를 찾아온 내가 나에게 말했다.


오래전 100번 거절당하기 챌린지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거절당하기 연습이 멘탈을 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 머리로는 동의하나

일부러 거절당하고자 하는 도전은 쉽사리 실천이 되지 않는다.


적당히 머리를 써가며 사소한 돌다리 하나도 하나씩 두들겨가며 발에 물을 묻혀본 적이 없는 이에겐

작은 물방울 하나조차도 큰 오점과 같아 돌다리 위에 그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얼음이 된다.

그렇게 하염없이 서있는 일들이 잦아질수록 

새로운 시작, 도전은 설렘 대신 두려움이란 두꺼운 가면이 되어 결국 생각조차 할 엄두가 나지 않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물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

라고,

나를 찾아온 내가 나에게 말했다.




코로나 이후 막연한 공포감이 나를 엄습해왔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들이 뒤엉켜 나는 잡아먹히고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닐 거야 하며 필사적으로 정답을 찾고자 나와 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본다.

같은 업종의 친구들은 아직 괜찮아 보인다. 인터넷에서 몇몇이 들의 불안 섞인 글들을 읽어본다.

위안이 되지 않는다.


친한 친구의 당분간 일주일에 하루만 출근한다는 말에 그제야 나도 모르게 안도한다.

결국 해결책이 아님에도 나와 같은 다른 이의 예를 통해 마음이 위로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즐겨보는 채 사장님의 유튜브에서는 불안 속에서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일에 집중하자라는 의미로 인용된다.


코로나 이전에도 나는 나만의 사과나무를 찾고 있었다.

다가올 알 수 없는 인생의 파도 속에서  알고, 즐겨할  있고, 집중할  있는 어떤 무엇이 필요했다.

물에 빠지는걸 두려워하는 나에겐 이나무 저나무를 만져가며 찾아볼 순 없었다. 내가 잡는 이 첫 번째 나무가 그 나무여야만 했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그 나무를 찾는 건 험난 방황의 길이었다.


방황의 길목에서 맞닥뜨린 코로나 상황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돌다리 위의 이에겐 불어나는 물길이었다.

시작을 하지 못해 망설이며 발을 물에 빠지더라도 발을 떼어야만 하는.




몇 년 전 끄적이던 스케치북을 꺼냈다.

지난번 내가 찾아왔을 때 방황했던 기록들을 넘겨본다.

굳은 손으로 어설프게 그렸던 그림들도 보인다.

주절주절 두서없는 생각들을 토해낸 흔적들도 보인다.


그렇게 어설프게 맞이했던 나는 내가 다시 떠나가자 주저 없이 스케치북을 덮어버렸다.

오래 걸리지 않아 다시 찾아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다시 온 나는 우리의 거친 대화를 담은 그때의 스케치북을 다시 건네었다.

 

그렇게 나는 지난번보다는 좀 더 침착하게 나를 마주하려 한다.  


조금은 더 정제된 글을 쓰면서,

조금은 더 단정히 그림을 그리면서,


각자의 소중한 사과나무를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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