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부침개와 사순설
재탄생 김치부침개와 나의 구원이야기
우리 집 토요일 점심 메뉴는 '약초향기'다.
매번 오늘 메뉴는 뭐냐고 묻는 가족들의 말이 추궁처럼 들리기도 하고, 미리 생각해놓지 않은 그날의 메뉴를 정하는 것이 반복될수록 스트레스가 돼서 요일별 메뉴를 짜서 주방에다 붙여 두었다.
사실 남편과 아이들은 아침밥 보다 아침잠이 고파서, 간헐적 단식 등의 이유로 아침을 건너뛰고, 점심은 각자 학교와 직장에서 먹기에, 나는 저녁만 준비하면 되는, 나름 한가한 우리 집 유일 셰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프를 위해 토요일과 주말에는 외식을 하거나 포장음식을 한 번씩 사 먹도록 메뉴를 짰다. 그리하여 나는 아예 토요일 점심의 1안으로 "약초향기"라는 7,000원짜리 가성비 좋은 한식뷔페식당이름을 버젓이 써 두었다.
그 식당도 조금씩 계절에 따라 메뉴가 바뀌긴 하지만, 요일별로 식단이 비슷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토요일 김치부침개였다. 사실 김치도 김치부침개도 좋아하지 않던 내가 약초향기에서 김치부침개 맛이 제일 먼저 생각나서 다시 찾는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예쁘게 잘라 놓은 김치 부침개 조각 중에서, 기름에 바삭하게 구워진 가장자리 조각만 무심한 듯 골라 넣는 신공까지 발휘했다.
각자 좋아하는 메뉴는 달라도 좋아하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 맛있게 먹고 만족도가 최상이었던 토요일 저녁. 점심을 맛있게 배부르게 먹었으니 저녁은 조금 가볍게 먹자하여 셰프인 내가 추천한 메뉴는 김치비빔국수였다.
평소 넣지 않던 참깨소스가 잘 어울릴 거 같아서 비빔장에 넣고 아삭하게 잘 씹히라고 김치도 넉넉하게 썰어 넣었다. 기대한 대로 맛있었다. 그런데 너무 넉넉하게 김치를 넣은 탓이었나? 아들 것에도 남편 그릇에도 김치가 무더기로 남아버렸다. 아까운 것! 김장을 한 후에는 어김없이 앓아누우셨던 친정엄마가 정성스레 전해주신 김치인데. 아무래도 그냥 버리기가 아깝다. 김치가 너무 많이 남았다고 안타까워하는 나를 바라보던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우리 이거 남겨 뒀다가 내일 김치부침개 해 먹을까? 우리 식구끼리 먹을 꺼니가 상관없지 않아?" 점심에 김치부침개를 맛있게 먹고, 한 번 더 가져와서 먹었던 걸 아는 남편이 제안했다. "와! 좋은 생각인데?" 나는 바로 맞장구를 쳤고, 그릇에 남은 김치조각들과 김치비빔국수에조차 쓰이지 못했던 김치조각들 모두 한 그릇에 모았다. 누가 보면 음식 쓰레기일 수 있으나 우리 눈엔 내일 김치부침개로 맛있게 재탄생할 훌륭한 재료였으니!
다음 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점점 배가 고파져오자 냉장실의 김치가 떠오르기까지 했다. 어서 가서 만들어야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밀가루가 안 좋은 나의 위를 위해, 오트밀가루를 대신 반죽으로 사용했다. 알맞은 농도로 김치부침개 반죽이 완성되고, 한 번 뒤집은 부침개 위에 눈꽃치즈까지 솔솔 뿌려 익혔다. 드디어 시식의 시간, 와~^^*
사실 전날 먹은 약초향기 부침개만은 못했지만, 내가 만든 것치곤 꽤 훌륭했다. 게다 밀가루 대신 몸에 좋은 오트밀가루가 들어가기까지 한 것 아닌가? ㅎㅎ
남편과 김치부침개를 나눠먹으며, 버려질 뻔한 김치조각들이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은 오트밀 김치부침개로 탄생한 히스토리가 신기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그리고 배가 고파지면서 집중력이 떨어졌던 그날 목사님의 설교말씀이 희한하게 떠올랐다.
복음은 열 번은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인간이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얻는 능력이라는. 나 역시 그분 앞에 세워진다면 열 번은 죽어 마땅한 인간인데, 이렇게 다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정성스럽게 나를 지으시고, 나의 죄와 실수들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다시 새롭게 하시기로 작정하신 그분의 의 때문일 것이다.
쓰레기가 될 뻔한 김치조각을 김치부침개로 다시 만들기로 작정하면서 일어난 어제오늘의 에피소드로 사순절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