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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빈 Mar 18. 2020

페트의 무한 여정

(단편소설) 

  이 여정은 나의 운명인걸까? 버려진 순간이자 여정의 첫 시작이 생각난다. 그때도 난 어둠 속에 있었다. 한 줌 들어오는 빛 속에서 하루 종일 나를 데리고 다니던 사람이 등을 돌려 떠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내가 갖고 있었던 모든 것을 가져간 뒤 나를 버렸다. 내가 어떻게 그와 만났는지는 기억은 없다. 나는 핑크색 옷을 입은 상태로 그의 한 손에 잡혀있던 것부터 기억이 난다. 버려졌다는 슬픔도 잠시, 어두움에 익숙해지자 주위가 보였다. 나와 비슷한 생김새들도 있고, 아닌 아이들도 있다. 그들도 나처럼 그날 버려졌다고 했다. 한 아이는 며칠 동안 열심히 짐꾼 역할을 했는데 버려졌고, 어떤 아이는 어떻게 버려졌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긍정적인 몇몇의 주도로 더 이상 버려지지 않을 거라며, 우리끼리 평생 함께 하자는 훈훈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나 훈훈한 분위기는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같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우리들을 이리 저리 훑어보더니 그룹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생김새를 기준으로 나눠진 것 같았다. 그런데 두 사람 중 한 명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옷을 벗기고 던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혼돈에 빠졌고, 이동 중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타다다탁!!’ 이상한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비슷한 생김새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옆에 있는 작은 아이에게 “여긴 어디니?”라고 물었다. 작은 아이는 그곳에 꽤 오래 있었는지 많은 정보를 알려줬다. 그곳은 서울시의 가장 큰 쓰레기장이고 곧 다른 곳으로 이동해 땅에 묻힌다고 말했다. 이 말에 나는 놀랐다. ‘세상에 나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그새 죽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슬펐다. 그러나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작은 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죽는 거 아니니까 얼굴 풀어. 그저 땅에 묻히는 거야. 땅에 묻힐 뻔한 친구의 말을 건너들었는데 땅에 묻혀도 절대 죽지 않는대. 그 안에서 더 많은 친구들 만나고 좋은 거야”.  ‘땅에 묻혀도 죽지 않는다니 그럼 난 어떻게 하면 죽는 거지?’라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 순간 다른 친구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대화는 중단됐다. 이후 작은 아이와 대화를 하지 못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왔고, 자기소개 하는데 모든 시간을 썼다. 


  쓰레기장에서 며칠을 보낸 어느 날, 매연을 내뿜는 큰 차가 소음으로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그는 큰 몸체와 강한 힘으로 우리들을 위협했고, 한 움큼씩 잡아 자신의 등에 태웠다. 나를 마지막으로 태우고, 차는 쓰레기장을 나갔다. 깨끗한 냄새와 맑은 하늘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차가 멈춰섰고, 순간 나는 무게중심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당황한 나는 친구들에게 소리쳤고 친구들도 나를 내려다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차는 내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대로 가버렸다. 그렇다. 나는 차에게 조차 버려진 것이었다. 얼마나 그대로 있었을까? 갑자기 누군가 나를 찼다. 웬 꼬맹이가 내 옆구리를 쳤다. 나는 굴렀다. 그 꼬맹이는 달려오더니 내 배를 쳤다. 또 다시 굴렀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기를 나는 물에 빠졌다. 꼬맹이는 그대로 제 갈 길을 갔다. 황당함에 꼬맹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찰싹’ 물살이 나를 때렸다. 한 대씩 때리던 물살은 곧이어 나를 거칠게 밀었다. 나는 그대로 휩쓸려 바다까지 밀려갔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망망대해 위에서 여정을 하게 되었다. 


(사진=크리스 조던 '자이어')


  바다에 떠밀려 왔을 때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나 혼자 이곳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을 살아야한다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바다에 오고 얼마 안 돼서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친구는 잠시 만난 것이라 통성명을 못했다. 편의상 ‘네트’라고 하겠다. 네트는 외관상 많이 다쳤지만 입만큼은 살아있었다. 네트는 “나는 내 생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살았어. 바다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지. 바다에 대해 궁금하면 정중하게 나한테 물어봐!” 나는 거만한 그의 말투가 불편했고, 그와 이별을 결심했다. 그러나 이별을 통보하려는 순간 바다거북이가 헤엄쳐왔고, 목에 네트를 태우고 계속 헤엄쳐 갔다. 당시에 나는 네트의 잘난 척 때문에 피곤했던 상황인지라 네트가 없어져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았다. 바다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있었고 그들을 구경하는 건 재밌었다. 가끔 그들 등에 타서 여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다. 그날도 어김없이 물고기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오색빛깔의 물고기를 구경하느라 내 뒤에서 다가오는 크고 검은 그림자를 느끼지 못했다. ‘쩌억’ 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순간! 갑자기 세상이 깜깜해졌다. ‘출렁출렁’ 바닷물을 타고 어딘가로 내려가는 것 같았지만 너무 어두워서 주변이 보이질 않았다. 덜컥 겁이 난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오로지 청각에만 의지했다. 꿀렁거리는 소리와 부딪히는 소리 등이 들리더니 갑자기 고요해졌다. 눈을 뜨니 온 세상이 핑크빛이었다. 


(사진= 크리스 조던 'Whale')


  그곳이 어디였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그때까지 있던 곳 중에서 가장 좋았다. 따뜻했고 벽도 부드러웠고 다양한 친구들이 있었다. 나와 비슷한 생김새 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모를 가진 친구들을 만났다. 더 이상 어딘가로 이동할 걱정도 떠밀릴 걱정도 없었던 우리들은 매일 게임하고 놀고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몇 달일까, 몇 년일까.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문제의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른쪽, 왼쪽, 위, 아래로 한동안 요동을 치더니 갑자기 잠잠해졌다. 우리는 잠깐의 사고이겠거니 하고 다시 하던 게임을 하려는 데 갑자기 한기가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추위의 근원지를 찾아 벽의 이곳저곳을 살펴봤는데 갑자기 위쪽 벽이 얇아지더니 이내 갈라졌다. 우리는 너무 놀라 움직임을 멈췄는데 갈라진 틈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보더니 하나둘씩 우리를 보금자리에서 꺼내 차가운 바닥에 던졌다. 우리는 서로를 부르며 자신들의 위치를 알렸다. 그러나 바닥에 닿음과 동시에 어떤 아이는 쓰레기통에, 어떤 아이는 바람에 날리며 이리저리 흩어졌다. 정신없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내 나는 다시 혼자가 됐다. 


  오랜만의 육지는 너무 추웠고 외로웠다. 차라리 다시 쓰레기장으로 가고 싶었다. 그때 내 마음을 안 것인지 멀리서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날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 날 쓰레기장에 버려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를 그대로 발로 차서 바다로 버렸다. 그리고 나는 처음 바다에 버려진 그날처럼 거친 물살에 떠밀려 바다 한가운데로 옮겨졌다. 이것이 몇 년 전 나의 여정이었다. 지금까지 여정으로 내가 깨달은 바는 2가지이다. 첫째, 나는 앞으로 계속 여러 친구들을 만날 것이다. 둘째,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여정이 끝난 상태는 아니다. 그날 이후 난 계속 바다에서 살고 있다. 매일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또한 몇 년 전부터는 나를 소개할 이름을 가졌다. 너무 많은 아이들을 만나다보니 이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차에 한 아이가 지어주었다. 육지에서 나처럼 생긴 아이를 부르는 말이 있다면서. 그 이름은 ‘페트병’. 그래서 나는 줄여서 ‘페트(PET)’로 이름 지었다. 저 앞에 나와 비슷하게 생긴 아이들, 즉 페트병들이 대거 몰려오고 있다. 당분간 저들과 시간을 보내면 될 것 같다. 이렇게 나의 여정은 계속된다.     


Written by 조영빈




글쓴이의 말.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작년에 대학원 과제로 두 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 중 '과일계의 하마, 아보카도'가 많은 관심을 받아 신기하고 기뻤습니다. 그러나 해당 수업이 끝나고 본업이 바빠지면서 잠시 브런치를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컴퓨터 바탕화면을 정리하면서 이 글을 발견했습니다. 이 글 또한 과제의 한 종류였습니다. 당시 과제는 크리스 조던의 전시를 보고 감상문을 자유형식으로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 조던이 그림으로 플라스틱의 비분해성으로 인한 위험성을 표현했듯 저도 재밌는 방식으로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소설 형식의 짧은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과제로 제출했던 글을 그대로 올린 것이 아니라 교수님의 의견 (주인공이 페트병인 사실을 마지막에 제시하면 좋을 것 같다)을 적극 수용하여 대폭 수정한 것입니다. 좋은 의견 주신 최선영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에 글쓴이의 말을 덧붙인 것은 독자들께서 소설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돕고 싶어서 입니다. 글 속의 친구들은 플라스틱, 비닐과 같이 분해가 어려운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지만 사람들의 과도한 사용으로 환경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갖고 있던 것이라 하면 페트병은 물, 비닐은 여러 내용물들을 의미합니다. 즉, 사람들이 이것들을 일회용으로 이용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잘난척쟁이 '네트'는 그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고기잡이용그물은 찢어지면 고치는 것보다 새로 구매하는 것이 더 저렴하여 바다에 그냥 버려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버려진 것들은 지구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 예로 페트가 오랜 기간 있었던 따뜻했던 곳, 그곳은 바로 고래의 뱃속입니다. 많은 플라스틱들이 바다로 흘러가고 있고, 동물들은 구분하지 못한 채 플라스틱들을 먹게 됩니다. 


미국의 예술가 크리스 조던은 사진 및 그림들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오랜 기간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이것들이 동물들에게 끼치는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첫번째 그림은 그냥 파도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을 매우 깊이 들여다보면 2.4 million 개의 플라스틱이 있습니다. 이 값은 매시간 전세계 바다로 흘러들어오는 플라스틱 갯수입니다. 두번째 사진은 50,000 개의 플라스틱 가방으로 그려진 것으로, 이 값은 전세계 바다의 square 당 떠다니는 플라스틱 조각의 갯수입니다. 그림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크리스 조던의 홈페이지를 참고하길 바랍니다. 


끝으로 플라스틱의 위험성은 점점 주목을 받고 있고, 제로웨이스트 등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여러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도 짧은 글로나마 플라스틱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 동참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단발성이지 않기를 희망하며 저부터 플라스틱 줄이기를 실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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