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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른거북 Apr 30. 2021

버림의 미학은 알지만.. 못 버려요..

소진하기

한창 'TV프로 신박한 정리'에 빠져있던 적이 있다.


우리 집 물건을 하나씩 버리며 치우지는 못하더라도 비워져 나가는 여백의 여유로움과 후련함을 공감하곤 했다.


버림의 미학은 알겠지만 그것은 나에게 쉽지 않았다.

쉽게 말해 나는 물건을 잘 못 버리는 성격이다.



상태 좋은, 예쁜 상자는 고이 모셔두었다가 정리할 때 활용하기도 하고 마트에서 장 볼 때 식품이 담겨있는 짱짱한 플라스틱 통도 버리지 못해 차곡차곡 쌓아 또 다른 물건을 담을 때 사용하기도 한다.



케이크나 선물 포장을 해체하며 나오는 알록달록 예쁜 리본 역시 버리지 못한다.

심지어 꽃다발 포장지까지 버리지 못한다.

왜 이걸 돌돌 말아 보관하고 싶은 건지... (그래도 이 포장지로 몇 번 꽃을 사서 직접 포장해서 선물했다. 물론 예쁘게 포장이 된 건 아니다!)



그렇다.

나는 흔히 말하는 맥시멈리즘(maximalism) 올곧게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나는 성격이 급한지라 사용하던 물건이 똑떨어지는 걸 보고 나서 사는 것을 견디기 어렵다. 하나가 남으면 미리 두어 개를 더 사는 편이고 어차피 쓰는 거라면 대용량도 마다하지 않고 여러 개 사는 편이다. 그렇기에 주로 내가 사용하는 물건이 똑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화장대 서랍장에는 화장품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이러한 생활이 매우 편했고 편리했다.

필요한 물건이 도착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어디에서 구입하지?'라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임신 이후 나의 생각이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변했다.



나는 이렇게 쌓아 놓고 사용하는 물건을 다 못쓰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화장품을 조심해야 하는 시기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가이다 보니 이것저것 알게 된, 주의해야 할, 피해야 할 항목에 특정 종류의 화장품이 있었다.

미백과 주름 관련 기능성 화장품은 태아에게 좋지 못하다고. 좋지 못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사용하기 찝찌름해서 임신기간 중 가볍게 늘 화장을 했고 주름, 미백이 박혀있는 화장품은 웬만하면 피했다. (물론 아예 안 쓴 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주름, 미백 관련 쌓여있던 화장품들은 꽤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다 보니 재고가 넘쳐났고 유통기한 내 소비할 방법이 없어 보이자 나눔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겪다 보니 '온전히 버리는 삶'은 불가능하지만 가장 쉽게 일단은 내가 가진 재고를 천천히 소진해보기로 결심했다.



다 쓰고 사기! 있는 거 먼저 쓰기!


누군가에게 쉬운 일이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그것은 화장품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물건에 적용이 됐다. 생필품, 취미용품 등등



화장품을 사면 은근 샘플을 많이 준다.

나중에 여행 갈 때 써야지 라고 두는 편인데 요즘은 이렇게라도 비우는 삶을 실천하고자 샘플 먼저 쓰기로 했고 궁금하다고 사놨던, 한두 번씩 사용했던, 아직도 많이 남이 있는 화장품 먼저 차근차근 쓰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받은 샘플과 내가 소진해야 할 화장품을 유통기한, 품목 순으로 정리했다.


그간 모아뒀던 샘플을 하나씩 버려갈 때의 쾌감이란!!



이런 나의 다짐은 아가에게도 적용된다. 아가도 예외는 없다.(ㅋㅋㅋ)

아가 용품을 사다 보면 로션, 수딩젤, 올인원 워시 등 샘플을 많이 준다. 모두 다 순한 제품이니 아가 역시도 나와 같이 차근차근 샘플 먼저! 써나가고 있다.



그렇게 트리에 수북하던 생필품 재고를 하나씩 비워나가고 있고, 리 집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당장 사용하지 못하는 텐트 집,  장난감, 차(tea), 아가 용품들도 나눔 하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너무 아까웠다.... 아직 비움과 나눔에 진심이 되려면 멀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애정 하는 식물들. 최근 들어 아가 고무나무들을 네 그루나 떠나보냈다. (물꽂이 2그루, 아가 고무나무 2그루)



쌓여있는 넉넉함이 익숙하고

비워가는 여백이 조금은 서운하고, 망설여지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소진하는 쾌감이, 생겨나는 여유가 싫지만은 않다.




이제 치약 딱 1개 남았다.

많이 참았다.

 

이제 다시 채워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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